브라이언 프리엘(1) 몰리 스위니 - 보는 것과 아는 것 독서일기-희곡


생존한 아일랜드의 대-극작가 브라이언 프리엘은 (아마도) 살아있는 극작가 중에서 꽤나 좋아하는 작가인데, 정작 감상은 귀찮아서 안 쓰고 있던 현실이다. 그래서 하나씩이나마 써보려고 한다.

<몰리 스위니>는 눈먼 여인 몰리 스위니와 그녀의 남편 프랭크, 그리고 의사 라이스 씨의 세 독백으로 이루어진 희곡이다.
희곡의 내용은 역시 선배 극작가이자 아일랜드 희곡의 대표 작가 중 한 명인 J.M. 싱의 <성자의 샘>을 연상케하는데, 두 희곡 모두 '눈을 뜬' 맹인이 잃어버리는 것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희곡이라 그럴 것이다. (다만 올리버 색스의 에쎄이에게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 추후 읽어봐야겠다.)
이 비극은 남편과 의사에 의하여 보이지 않던 세계에서 강제로 보이는 세계로 옮겨진 여인 몰리의 '몰락'에 관한 2막극이다.

희곡 자체는 어떤 이야기가 진행된다기보단 상징극스러움이 더 강한데, 기존의 대표적인 프리엘의 희곡들의 경우가 '아일랜드'를 직접적으로 다룬다면, 이 '상징'극은 간접적으로 다루는 것 중 하나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캐슬린 니 훌리안과 같은 존재가 몰리인지도 모르겠다. '맹인'이었다 강제로 보이는 세계로 옮겨진 이.

희곡의 형식 자체는 같은 무대에 있음에도 서로 결코 대화하지 않는 세 인물의 독백들로 구성되며, 관객(혹은 독자)는 이들의 제한된 모놀로그로만 정보를 접한다. 이러한 시도 자체는 프리엘의 전작인 <신앙 치료사>에서도 쓰인 바 있다.
만약에 이런 세 인물을 '하나의 인물'로 친다면, 무대라는 정신 아래 분열된 정신들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프리엘의 주된 소재 중 하나는 분열되었으며 결코 서로 만날 수 없는 자아이기도 하니까.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프리엘은 뛰어난 작가이며 그렇기에 모놀로그로만 진행되는 정적인 희곡이라도 어떤 격한 동작들보다도 긴박감 있게 느껴진다.
아마도 희곡을 받아들일 때 가장 헷갈릴 부분은 '몰리'를 무엇으로 봐야하는 문제일텐데, 아일랜드로 보든, 아님 다른 상징으로 보든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꽤나 다양하게 상징될 여지가 풍부하기에.

어떤 면에선 그의 대표작 <번역>을 연상케하는 부분도 있었는데, 그건 추후 <번역> 감상에서 께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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