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 케인 희곡들 - 죽음, 사랑, 삶 독서일기-희곡


0. 
극작가 사라 케인의 경우, 서점의 희곡 코너에서 자주보던 작가였고, 한 권짜리 '전집'이 있는 그런 작가였다. 호기심에 검색해본 결과,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자살한 천재 극작가, 정도로 불리는 인물이었다. 그 외 특별히 그녀의 작품들에 대한 검색은 하지 않아, 그저 막연히 '죽은 천재'로 평가되는 극작가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의 희곡 전집을 읽게 되었는데, (전집이라봤자, 5편의 희곡에 불과하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충격'을 주는 그런 종류의 극작가였다. 여기엔 불쾌감이나 당혹감, 그리고 그러한 감정 끝에서 느끼는 천재성을 의미한다. '우울증으로 자살한 작가'의 작품이라 하면 으레 그런 우울한 작품을 썼을 것이란 선입견이 있을 것이고, 그녀 또한 그런 선입견에 잘 어울리는 작품들을 썼다.
하지만 그런 선입견에 걸맞는 희곡들을 썼다고 하여 그녀가 평범하게 우울한 희곡들을 쓰는 그런 평범한 작가인 것은 결코 아니다. 
그녀의 작품들은 대개 노골적인 폭력과 성의 묘사, '사랑'이란 감정의 강조, 그리고 죽음에 대한 충동 등으로 구성되지만, 그 충격은 이러한 종류의 작품을 쓰는 작가들 중에서도 매우 크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1. <폭파 Blasted>

사라 케인의 첫 작품으로, 총 등장인물은 이언, 케이트, 그리고 병사, 이렇게 3명 뿐인 짧은 희곡이다. 총 5장면으로 구성된 이 희곡의 시작은 평범한 희곡처럼 흘러간다. 이언과 케이트, 집중되는 남녀. 둘의 오고가는 대화. 전형적인 가정극처럼 흘러가지만, 이러한 '전형적임'은 장면2가 되면서 완전히 박살난다.
이언은 케이트를 강간하였으며, 따라서 케이트는 침대에서 운다. 이러한 당혹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희곡의 무대는 어느 전쟁터이며, 굶주린 병사의 침입으로 다시 한 번 극적으로 변하게 된다.
병사까지 등장한 이후 희곡은 '폭파'와 더불어 노골적으로 폭력적이며 성적인 방향으로 향한다. 남성에 의한 남성 강간이라든가, 눈알을 씹어먹는다든가, 아이의 시체를 먹는다든가.
희곡 속 세계 자체는 '리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느 전쟁 중인 곳이고 무대도 설정되어있지만, 실재하는 세계라기보단 분열된 정신의 세계를 그대로 옮겨놓은 쪽에 더 가깝다. 실제로 병사와 이언의 관계는 대립되거나 서로 독립된 두 존재라기보단 하나의 존재가 두 개의 배역으로 분열되었음으로 보는 쪽이 더 가깝다.

눈이 먼 이언과 마지막의 마치 '용서'하는 것처럼 보이는 케이트의 모습은 이전까지의 잔혹하고 충격적인 장면 끝에 작은 정화감을 느끼게 해준다. 사라 케인의 작품 세계의 중점은 대부분 '사랑'인데, 이러한 마지막 장면에서 그러한 점이 더욱 두드러진다.

희곡 자체는 충격의 연속이다. 말 그대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과 같은 충격이며 개인적으로 읽고 난 후 잠시 동안 '여운' 때문에 다른 것을 읽지 못할 정도의 희곡이다. 희곡 자체는 상당한 불쾌감을 일부러 유발한다. 이런 종류의 '기분 나쁨'은 희곡에선 핀터 이후론 처음이다. 물론 기분 좋은 불쾌감이다. 

2. <파에드라의 사랑>

파에드라와 히폴리투스의 관계는 많은 극작가들이 이미 다루었다. 에우리피데스, 세네카, 라신, 유진 오닐 등등.
단언컨데 케인의 <파에드라의 사랑>은 그러한 많은 파에드라 극 중에서도 가장 폭력적인 극일 것이다.

전반적인 극 자체는 <폭파>와 유사하다. 다만 거기에다 파에드라의 광기에 가까운 사랑이 더해질 뿐이다. 
비록 '파에드라의 사랑'이지만, 파에드라는 인물보다는 상징으로서 무대를 지배한다. 그녀가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히폴리투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구성되며, '파에드라의 사랑' 자체가 무대를 횡횡한다.

히폴리투스를 향한 심판, 무대 위에서 찢겨죽어가는 직접적인 잔혹의 연출은 단순히 많이 반복되는 이야기로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그간 은유적으로 표현되던 것들을 우리에게 직접 보여주는 충격으로 다가온다. 어찌보면 케인의 희곡은 그간의 파에드라극들에서 꺼려지던 요소들을 과감하게 표현한 셈이다.

3. <정화된 자들> 

사라 케인은 불행히도 고작 5편의 희곡을 우리에게 남겨주었고, 이 희곡은 그 중간인 3번째에 해당하는 극인데, 실제 그녀의 다섯 희곡 중에서도 중간 단계에 해당되는 희곡이라 할 수 있다.
첫 두 희곡, <폭파>와 <파에드라의 사랑>은 극의 과감한 폭력을 연출하지만, 전반적인 극의 구조 등은 기존의 희곡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정화된 자들>은 그러한 희곡 자체의 변화를 주기 시작한 희곡이며, 이는 <갈망>과 <4.48 사이코시스>로 이어진다.
20개의 장면으로 이루어진 이 난해하고 불쾌한 희곡과 가장 가까운, 정확하게는 영향을 준 희곡은 <보이체크>일 것이다. 마치 보이체크와 박사의 장면을 20 개의 장면으로 확장시켰다고 생각해보아라. 그러면 <정화된 자들>과 유사한 희곡이 나올 것이다.
기괴하고 사악한 박사 팅커와 그의 실험체들에 관한 이 희곡이 정확히 어떠한 것인지 파악하기는 매우 힘들다. 부조리한 장면들만이 연속될 뿐이고, 그 속에는 역시나 노골적인 성애의 연출이나 '팅커'만이 있을 뿐이다.

과도한 신체의 변형, 성애, 게이나 레즈비언 등등 어찌보면 케인은 '상처받은 자아'를 무대로 옮겼는지도 모르겠다. (이는 뒤의 두 희곡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희곡 자체는 어떤 면에선 '육신'을 향한 숭배다. 팅커와 그의 실험체들의 몸을 이용한 실험들은 모두 이러한 '육신'숭배로 귀결된다.그리고 그 육신은 곧 사랑을 할 수 있는 육체다.

4. <갈망>, <4.48 사이코시스>


이제 사라 케인은 '무대' 자체를 해체하려고 하는데, <갈망>에선 C,M,D,A, 등 이니셜로 표현되는 인물들만이 나올 뿐이고, <4.48 사이코시스>에선 이러한 인물들을 표기하는 것조차 그녀는 포기한다. 물론 더불어 어떠한 무대 지시나 무대를 만들려는 것조차도 그녀는 그만둔다.
<갈망>은 말 그대로 사랑에 대한 갈망을 극대화한 희곡이라 할 수 있는데, 표현되는 주제들 자체는 이전의 그녀의 희곡들과 유사하다. 다만 특이한 점은 말 그대로 '대사'들만이 무대에 존재한다는 점인데, 우리는 비록 어떠한 이야기를 추측할 수는 있지만, 과연 무대라는 세계 위에 펼쳐지는 이야기를 보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거대한 독백을 보는 것인지 알 수 없다.

<4.48 사이코시스>는 그녀의 마지막 작품으로, 어떤 면에선 하나의 거대한 유언장이다. 모든 것은 '죽음'으로 귀결되며, 정확히 몇 명의 독백이 필요한지도 우리는 모른다. (4.48은 4시 48분을 의미한다고 한다)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작품이긴 한데, 정말로 그녀가 자신의 자살을 염두에 두고 썼을지 우리는 알 수 없을 것이다. 애초에 '죽음'은 그녀의 작품 세계에서 많이 나타나던 소재이므로.
더군다나 어떤 면에선 역설적이게도 '희망적'인 희곡이다.

5.
젊은 나이에 죽은 작가들이 그렇듯, 고작 5편의 희곡만을 남겼다는 것은 우리에게 비극적이다. 그럼에도 한 편 한 편 걸작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다른 극작가에서 께속?



덧글

  • 2014/04/10 15:48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JHALOFF 2014/04/15 05:19 #

    아 죄송합니다 저는 원서로 읽어서요. 번역본은 없는거 같습니다
  • 2014/10/07 17:14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JHALOFF 2014/10/28 08:11 #

    파일은 모르겠군요 검색하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 2017/06/15 20:33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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