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로 칼비노 - 엇갈린 운명의 성/ 팔로마르 독서일기-소설



<엇갈린 운명의 성> -

이 '장편'는 독자, 아니 심지어 작가들까지도 당황하게 만들만한 책인데, 이 책이 '이미지'들을 중심으로 '무작위'하게 쓰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칼비노는 이 책을 쓴 과정을 후기를 통해서 간략하게 언급하는데, 방법은 간단하다. 랜덤하게 타로 카드를 몇 장 뽑고, 순서 자체는 작가가 마음대로 배열하여, 그 그림들을 토대로 이야기를 구상한다.
말 그대로 그림들을 토대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그 그림들조차 순서를 정하는 것 외엔 무질서하게 정해진 것들이다.

이야기 자체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쓰여진 것과 어울리게 기묘한데, 이야기 자체는 두 부분으로 나뉘고, 각각 성과 여관이 그 배경이다. 성과 여관에 모여든 여행자들은 순간 알 수 없는 이유로 벙어리가 되어버리고, 서로 말을 할 수 없기에 타로카드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다. 이러한 과정 자체를 보면 알겠지만, 소위 말하는 데카메론 형식의 장편이기도 하다.

칼비노가 이야기하는 이야기들은 사실 새로운 것은 없다. 언제나 반복되어왔던 이야기들이다. 그곳엔 롤랑이나 아스톨포의 이야기, 파우스트나 햄릿 등 이미 누군가가 했던 이야기 밖에 없다. (그나마 칼비노의 창작이라 할 수 있는 주저하는 남자 이야기는 '엇갈린 운명'과 연관되니 중요하긴 하다)

우선적으로 우리는 타로카드의 이미지들을 해석한 것들로 이러한 이야기들을 끄집어내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며, 이러한 '옛' 이야기는 사실 언제나 가장 새로운 이야기임을 깨닫게 되는 것에 감탄하며, 마지막으로 이러한 이야기들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상징'에 감탄한다. 어떤 면에서 칼비노는 '이미지'들을 토대로 이야기를 끄집어냈었고, 그 이야기는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다. 또한 그 이야기 자체 또한 '엇갈린 운명'이 암시하듯, 가지 않은 길 또한 존재한다. 그리고 그 가지 않은 길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작가의 몫이 아닌, 독자의 몫이기도 하다.

칼비노는 거의 끝에 가서야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오이디푸스'의 이야기가 부분적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오이디푸스가 누구인가? 끝까지 진실을 알고자 한 이가 아닌가? 이러한 이야기 끝엔, 이러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거나, 읽는 것의 끝엔 진실이 있을까? 
텍스트만이 알 뿐이다. 오래된 이야기는 없다. 모든 이야기는 언제나 가장 새롭다.

<팔로마르> - 

칼비노의 마지막 장편으로 볼 수 있을 책인데, 역시나 '팔로마르'씨를 중심으로 한 연작집으로도 볼 수 있다. (다른 후기 칼비노의 장편들처럼) 
소설은 말 그대로 팔로마르 씨와 그가 보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3x3의 구성으로 되어있으며,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이 소설이 환상소설처럼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거기엔 어떠한 비현실적인 것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저 팔로마르란 현인은 일상을, 주변환경이나, 주위의 동물들, 혹은 하늘의 별들이나 세상을 관찰하고, 사색할 뿐이다.
유사한 책으론 역시나 볼테르의 <깡디드>가 있을 것인데, '정원'의 강조를 보면, 일맥상통한다.
결말 자체는 꽤나 아이러니하다. '진리'를 깨닫자, 모든 것이 끝난다. 어쩌면 그것이 팔로마르의 삶이자, 우리 독자들의 삶일 지도 모르겠다.


 

덧글

  • CATHA 2014/03/25 21:43 # 삭제 답글

    오오 칼비노 새로운 리뷰군요 (덕분에 겨울밤 여행자는 잘읽고 있습니다.) 다소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전자의 작중에서 인물들이 말을 못하는데 오직 타로카드에 의존해서 어떻게 소통하나요?
  • JHALOFF 2014/03/26 04:31 #

    그냥 이야기를 하는데, 임의의 타로카드를 나열하는 형식입니다. 그것에 대한 해석 자체는 화자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라, 독자-화자 사이에서만 이야기가 성립되지, 등장인물 간엔 이미지의 나열들만이 있을 뿐입니다. 어떤 면에선 화자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진짜 그런 의도로 말하려는 이미지의 나열들인지는 모릅니다. 말 그대로 상징들의 나열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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