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퀴엠 中 - 아흐마토바 독서일기-시


아흐마토바는 대략 만델슈탐, 파스테르나크, 츠베타예바 등과  더불어 20세기 러시아 시의 체고 존엄 정도로 분류되는 시인으로 보면 될 것 같다.

레퀴엠(진혼곡)은 여러 짤막짤막한 시들로 구성된 하나의 사이클이며 실제 여류시인이었던 아흐마토바가 숙청당하여 간 수용소 생활을 기반으로 쓰였다. (지인들을 비롯한 첫 남편과 아들도 끌려갔으며 남편이자 역시 시인인 구밀료프는 굴라그에서 죽는다.)

읽고서 별다른 감상을 남기진 않았던 아흐마토바 영역 시전집에서 부분부분 발췌한다.
(레퀴엠 자체는 아흐마토바 사후에야 출판된다)

[아니, 이국 하늘 지붕 아래에서도 아니었고, 
이국 동(棟)의 방공호 아래에서도 아니었지- 
나는 내 동포들과 같이 있었다, 
그곳에서, 내 동포들이 불행하게도 있었던 그곳에서. 
1961]
- 제일 처음 나온 시.

[서문 대신  

예조프시나(대숙청)의 끔찍한 나날동안, 나는 레닌그라드의 죄수 행렬 속에서 열일곱 달을 보냈다. 
한 번은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았다.' 그러자 내 뒤에 서있던 파랗게 질린 입술의 여인은 내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전에는 들어보지 못했겠지만 모든 이들이 굴복하고 있던 마비상태에서 정신을 차리며 내 귀에 속삭였다. (이곳에선 누구나 말을 할 때 속삭였다)

"당신은 이 모든 것을 쓸 수 있나요?" 
나는 말했다."네, 나는 할 수 있어요." 
그러자 미소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한때 그녀의 얼굴이었을 것에 스쳐갔다.  

4월 1일, 1957 레닌그라드]
- 말 그대로 서문에 해당하는 산문. 어찌보면 일종의 계기가 아닐까 싶다. '이름으로 불렸다는' 의미는 아마도 '안나 아흐마토바'가 필명이기에 그런거 같다.


[이 여인은 아프며
이 여인은 홀로 있다,

남편은 무덤 속에 있고, 아들은 감옥에 있지만
나를 위해 기도해준다.]


[그들을 하나하나 이름으로 부르고 싶지만
이미 명부는 몰수되었고, 어디에서도 찾을 길이 없다

나는 그들을 위해 커다란 장막을 떴다
우연히 들은 그들의 빈약한 단어들로

나는 언제나, 어느 곳에서든 그들을 기억할 것이다,
나는 무엇이 오든 그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만약 1억의 비명이 쏟아져 나오는 
내 고문으로 지친 입에 그들이 재갈을 물린다면,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기를
나의 추도일 전야에.

그러나 만약에라도 이 나라에서
그들이 나의 기념비를 세울 것을 결정한다면,

나는 그 영광을 수락한다
다음과 같은 조건 아래에서 - 그 기념비는

내가 태어난 바다 근처에 세워져선 안 된다:
바다와의 내 마지막 연결은 부서졌으니,

차르의 정원의 아껴진 소나무 그루터기 근처에서도 안 된다,
절망의 그림자가 나를 볼테니까,

그러니 이곳, 내가 300 여 시간을 서있었고,
그들이 나를 위해 문의 빗장을 결코 벗기지 않은 이곳으로.

축복받은 죽음 속에서도 나는
잊지 않아야 한다, 죄수 호송차의 우르렁거림을,

증오스런 문이 어떻게 닫혔는지,
다친 짐승처럼 늙은 여인이 울부짖었음을.

그러면 눈이 녹아 흐르기를, 내 움직이지 않는 
청동 같은 눈꺼풀에서 흐르는 눈물처럼,

감옥의 비둘기가 저 멀리 구구 울고
네바의 배들이 고요히 항해하기를.]

-에필로그 2 일부. 원문 영역은 '지친 입'인데 다른 번역에선 '고문받은 입'으로도 번역하는거 같아서 그냥 둘 다 합쳤다. 어차피 중역이니. 

'1억의 비명이 쏟아져나오는 내 (고문받은)지친 입'은 레퀴엠에서 꽤 유명한 부분인듯 하다.



그 외 <영웅 없는 시>등은 언젠가.

덧글

  • CATHA 2014/06/26 01:08 # 삭제 답글

    러시아는 19세기 작품들로 친숙할 뿐 20세기에서 현대 들어서는 사실상 거의 아는바가 없었는데 이렇게 포스팅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혹시 친구분들이랑 운영하시던 웹진 폐쇄하셨나요?ㅠㅠ)
  • JHALOFF 2014/06/27 12:07 #

    아 다른걸로 주소 바뀌었는데 올라오는게 없어서 아직 주소를 올리진 않았습니다.
  • d 2017/03/16 23:36 # 삭제 답글

    어...별 상관은 없지만 이분이 수용소 생활을 하셨던가요?

    제가 알기로는 남편과 아들이 끌려갔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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