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준, <바벨> - 언어와 말의 실패한 결별 독서일기-소설



정용준 작가의 첫 장편 <바벨>이다.

<바벨>은 문단에서 장르적 요소(웃음)를 취했다고 칭찬할 법한 그러한 소설인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것을 읽을 바에야 차라리 잘 쓴 SF를 두세번 정독하는 것이 더 독자의 정신 건강에 좋을 것이다. 물론 <바벨> 자체는 그럭저럭 괜찮게 쓰여진 소설이라 할 수 있지만, 담고 있는 것, 표현하고자 하는 거대한 것을 고려하면 상당부분 실패한 평작에 불과하다.

<바벨>의 핵심적인 설정은 '노아'라는 과학자의 실험에 의하여 '말하는 것'을 박탈당한 세계다. 소리를 내서 말을 하면, <바벨> 속 인간들은 펠렛이란 분비물을 분출하게 되고, 이 분비물의 고통 때문에 자연스레  '말하는 것'은 곧 고통이 되며 세계에서 말은 사라진다.
우선 <바벨> 또한 다른 소설들이 그러하듯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시작하는 소설인데, 이 '세계'가 매우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두 가지 관점에서 비판이 가능한 듯 한데, 첫째는 현실적인 관점이고, 둘째는 인공적인 관점이다.
현실적인 관점에서의 비판은 말 그대로 <바벨> 속 세계는 작위적이기 그지 없는 세계란 점이다. 작중 아마도 대한민국일 정부가 나오고, 음모가 있으며, 전세계가 고통받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연스레 그렇다면 다른 세계는? 에 대한 의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바벨> 속 세계는 마치 대한민국만이 홀로 존재하는 것처럼 다른 것들은 거세된 인위적인 세계다.
물론 이러한 '인위적인 세계'라는 비판은 어느 정도 피할 수는 있다. <바벨>은 작가가 만든 홀로 존재하는 세계이며, 그렇기에 '현실'과는 접점이 있을 필요가 없다, 란 대응은 상식적이며 가능하며 필자 또한 위와 같은 비판 자체는 <바벨>에 대한 핵심적인 비판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작가가 독자적으로 만든 인공적인 세계 또한 실망스럽기 그지없는데, 가장 큰 이유는 작가 정용준이 모든 것을 단순화시켰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바벨>은 하나의 동화로 시작하고, 그 동화에 감동받는 소년이 만든 세계를 그리고, 다시 동화로 끝을 맺는다. 이 '동화'라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인데, 정용준은 정말로 동화나 우화처럼 <바벨>이라는 세계를 단순하게 만들어버렸다. 작가가 원했던 소재나 주제 등을 볼 때, 적어도 <바벨>은 홀로 존재하면서도, 우리의 현실처럼 복잡한 그런 세계였어야 했다.
이에서 비롯된 또다른 문제는 '정치적인' 묘사인데, 소설에서 흔히 나오듯, 무엇인가를 숨기고 탄압하는 정부, 맞서는 개인의 구도가 이 소설에서도 그려지며, 그러한 것 자체를 큰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문제는 <바벨>의 세계는 지극히 단순하고 우화적인 세계이기에 이러한 부분은 작가의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거세하는 것이 좋았을거란 생각이 들 정도로 소설의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나는 정치적인 것의 완전한 결별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오히려 '결별'한 것처럼 보이는 작품이 어설프게 정치적인 작품보다 더 정치적일 수도 있다는 점만을 강조하고 싶다.

위의 문제점들은 사실 소설의 치명적인 문제까지는 아니겠지만, 더 큰 문제는 <바벨>이 다루는 '언어'와 '말'의 문제다. 언어와 말은 우리 인간에게 핵심적인 요소이며 따라서 어느 한 쪽이 사라진 상황에 처한 인류를 그린다는 것은 분명 매력적인 소재일 것이다. <바벨>의 문제는 심도 있게 다루어야할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피상적으로 밖에 이 말의 결별을 다루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말을 찾고 싶어하는 자, 말의 추악함을 믿고, 말을 대신할 것을 원하는 자 등등 다양한 관점을 제시해봤자, 이 모든 것이 작가의 얄팍함에 무너진다. 
때때로 작가는 '언어'와 '말'을 혼동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말'의 불완전함을 논하면서 '언어'의 불완전함과 혼동하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조차 약간이나마 든다.
책의 가장 치명적이라고 보이는 설정은 '펠릿'의 존재인데, 작중 몇몇 이들은 이를 '불완전한 말'을 대체할 새로운 언어 수단으로 숭배하고, 작가도 어느 정도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 펠릿은 '말'을 해야 나온다. (작중 묘사에 따르면 장애인들도 생기긴 하지만, 모든 사람이 장애인은 아니므로) 말을 대신할 무언가가 곧 말을 해야 나오는 무언가라는 촌극이 어디 있는가. 그런걸 신봉하는 몇몇 작중 인물들은 머저리들인가? (이들 뿐만 아니라 상당수 인물들 또한 멍청하다)
결국 이런 철학적이고 생각할만한 언어와 말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 작가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랑 및 감정적으로 묘사는 되지만, 결국 작가 스스로도 무엇인지 모를, 한 마디로 생각을 포기한 낭만주의적인 무언가에 대해 기대면서 간신히 맺음을 짓는다.

<바벨> 의 문제점들은 다음과 같다:
1. 얄팍한 <바벨>이라는 세계
2. 얄팍한 언어와 말에 대한 혼동적인 고찰과 두리뭉실한 해결책.
3. 결국 기대는 것은 낭만적 무언가.

그나마 건질만한 것은 작중 중심이 된 동화나 몇몇 챕터 정도. 물론 흥미가 있다면 읽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차라리 더 발전된 다음 장편을 기대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같은 작가의 단편집 <가나>는 그럭저럭 괜찮았던 걸로 기억한다)





덧글

  • ㅁㄴㅇㄹ 2014/08/04 11:40 # 삭제 답글

    가나 단편집도 가나 표제작은 별로였는데 다른 작품들은 좋았지만요...

    바벨도 별론가보네요..
  • JHALOFF 2014/08/06 14:27 #

    요즘 작가들의 문제일지도 모르는데 장편과 단편은 다른 종류의 글쓰기인데, 장편 잘 쓰느는 작가가 잘 없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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