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노 게이치로 - <결괴>, <얼굴 없는 나체들> 독서일기-소설





히라노 게이치로의 <결괴>를 현대판 <죄와 벌>에 운운하는 것은 독자로서 조금 회의감을 일게 만드는 문구 같다. 불륜을 다룬다고 모든 작품이 현대의 <안나 까레니나>나 <마담 보바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죄와 벌>이 한 없이 진지하다면, <결괴>는 진지하다고 볼 순 없다. 오히려 '얄팍'하단 느낌까지 든다. 이 '얄팍'이란 것이 꼭 부정적인 의미란 것은 아니다.
물론 이를 단순히 게이치로나 일본문학이라서, 와 같은 문구로 포장할 순 없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현대 소설은 <죄와 벌>과 같은 멍청해보일 정도로까지의 한 없는 진지함으론 빠질 수 없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결괴>는 한 형제의 컴플렉스를 다루고, 사회의 컴플렉스가 낳은 연쇄 토막살인을 다루고, 현대 사회의 시스템의 문제로 확장되었다가 다시 개인으로 귀결된다. 책의 소개 문구는 '누가' 죽였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듯 하지만, 사실 책은 누가 죽였는지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최종적인 진실도 어찌보면 우스광스런 진실에 불과하며 별로 그 중요성이 부각되진 않는다. 
<죄와 벌>과 <결괴>의 가장 큰 차이는 <죄와 벌>이 형이상학적 살인을 다룬다면 <결괴>는 현실에서 일어날법한 사건을 다룬다는 점이다. 물론 <죄와 벌>도 현실의 사건을 배경으로 했지만, 로쟈의 모든 것은 본질적으론 형이상학의 영역이다. <결괴> 속 범인과 일련의 희생자들은 현실에서 벗어난 자기만의 무언가로 도피한 듯 보이지만, 그 근간엔 결국 현실이 있다. 그렇기에 게이치로는 일련의 얄팍할 수밖에 없는 현실들을 보여준다. 거기엔 매스컴도 있고, 이지메나 사법 체계의 폭력이나 사람들의 폭력 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어느 정도 휴머니즘으로의 귀의를 꽤나 강조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불만을 가질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근거 없는 대책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가볍게 읽을만하다.



<얼굴 없는 나체들>는 결괴보다도 훨씬 가볍게 읽을만한 19금 딱지가 붙은 소설인데, 딱지는 별로 중요하진 않은거 같다.
넷상으로 유포되는 일반인 커플의 섹스 동영상과 관련이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현실과는 다른 모습, 현실에선 몸을 가리지만, 넷상의 동영상에선 얼굴을 가리는 나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제목은 '얼굴 없는 나체들'이다. 

게이치로 본인이 그다지 진지한 작가인지는 아직까지도 회의감이 든다. 이 소설은 더욱 그렇다. 현대인들이 가질법한 문제를 다루긴 하지만, 그것이 '현대가 얄팍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인지, 아니면 작가 본인의 특성 때문인지 가볍게 읽힌다. 
이건 그다지 추천하진 않는다. 게이치로를 좋아한다면 읽어봄직할만은 하다.


덧글

  • 백일몽 2014/09/23 05:13 # 삭제 답글


    시대의 문제인지, 작가의 문제인지, 암튼 헨리 밀러의 넥서스 구절이 생각나 발췌해 둔 거 옮겨봄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죽었어. 이제 끝장이야. 우리들이 출발하는 것은 거기서부터야. 도스토예프스키 이후부터야. 그는 '혼'을 취급했어. 우리는 '마음'을 취급하면 어떻겠어?

    결국은 말야. 너도 알아차렸을지 모르지만 벌써 이 세상에는 혼이라고 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 그러니까 작가로 출발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말도 되지. 혼을 갖지 않은 작자들의 것을 어떻게 쓸 수 있단 말이야?


    내 생각으로는 도스토예프스키는 마치 단테가 중세기를 집약한 것처럼 현대를 요약해버렸어. 현대는-이 현대라는 것도 잘못된 명칭이지만-인간이 혼의 죽음에 순응하기 위한 단순한 과도기라고나 할까, 휴식의 시간에 불과해.
  • JHALOFF 2014/10/05 07:06 #

    아무래도 시대의 문제가 더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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