맬컴 라우리, <화산 아래서> - 술과 죽음의 무도 미분류




<화산 아래서>는 맬컴 라우리의 대표작이자 <율리시스>와 같은 소설들처럼 대부분의 분량을 단 하루를 위해 투자된 방대한 책이다. 멕시코를 배경으로,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 축제 (11월 2일)의 한 알콜중독자의 몰락을 다룬다. 여러 판본들의 표지를 살펴보면 대부분 화산, 술,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 이렇게 3가지 상징들 중 몇 개를 조합한 형태로 표지가 장식되는데, 저 3 요소 모두 소설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소설은 특이하게 1년 후의 모습을 시작으로 하였다가, 다시 정확히 1년 전의 죽은 자의 날을 그린다. 마치 '죽은 자의 날'에 죽은 영혼들이 돌아오듯, 과거는 돌아옥, 소설은 끝없이 과거와 과거의 과거 등이 얽히면서 진행된다.
주인공 제프리 퍼민은 알콜중독자이자 전직 영사로서 말 그대로 이미 몰락한 자다. 그는 술이 스스로를 망치고 있음을 알면서도, 끝없이 마시고, 소설 내내 우리는 그가 취했는지, 취하지 않았는지도 분간하기 어렵다. 그는 이혼하였으나 그의 전처가 다시 찾아오고, 그에겐 다시 재기할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나 그는 서서히 몰락하는 자이다. 그는 멕시코를 증오하면서도 한 없이 사랑하고, 떠나고 싶으면서도 남고 싶으며, 사랑을 하면서도, 증오를 하고, 술을 그만 마시고 싶으면서도 계속 마시려고 한다.
'때때로 내가 스스로에게 느끼는 것은 이런 것이지, 위대한 여행자로서 어떤 놀라운 땅을 발견했지만, 그 지식을 세상에 알려주기 위해 돌아올 순 없는 상황. 그리고 그 땅의 이름은 지옥이야.'
퍼민의 지옥은 멕시코다. 그는 끝없이 데킬라와 메스칼을 홀짝이며 축제를 즐기고 멕시코에 남고자 한다. (물론 그의 태도는 모순적이다) 두 화산 아래에 위치한 도시에서 그는 술에 취해 방랑한다.

소설은 여러 유용하게 쓰일 만한 상징들을 끝없이 던져주는데, 물론 이것들을 전부 받아먹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중요한 상징들이자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들은 몇 가지 있는데, 드 퀸시의 아편 중독자나, 말로우의 '몰락하는' 파우스투스 박사 등이 그 예일 것이다. 
특히나 말로우의 <파우스투스 박사>는 초반부터 중간중간 대놓고 독자들에게 이 책의 내용을 암시해준다. 괴테의 구원받은 파우스트와 달리, 철저하게 전설에 입각하여, 자기 몰락으로 길을 걷는 파우스투스. 퍼민 또한 이러한 파우스투스 계열의 인물일 것이다. 그는 꽤나 야심이 있고, 지적이며, 사랑받지만 그러면서도 스스로의 내면의 일종의 오만함 때문에 파멸하고 만다.
'얕은 자기 이해는 위험한 것이야.'
저 대사 만큼 이 소설의 핵심 중 하나인 대사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딱딱하게 들리지만, 그 실상은 술로 찌든 그러한 소설이다. 퍼민은 언제나 마시고, 또 마시며 제정신인지 술에 취했는지 알 수도 없고, 대부분은 말 그대로 알콜중독자의 정신 아래에서 그려진다. (이는 작가 본인이 알콜중독으로 고생했다는 점에서 더더욱 실감된다)
'세상에서 빈 술병보다 더 끔찍한 것은 없다! 빈 잔을 제외하고는…'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이나 작중 배경인 스페인 내전(파시즘과의 싸움)이 진행되는 유럽, 그리고 몰락 등을 보면, 우리의 영사 퍼민은 단순히 개인의 몰락이 아닌 서구의 몰락을 나타낸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파우스투스의 몰락은 독일 정신의 몰락일까?) 몰락한 자는 화산 아래로 떨어진다. 물론 이렇게 거창하게 머릿속에 생각할 필요 없이, 한 정신의 몰락으로 봐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소설 자체는 다른 모더니즘의 대작들과 마찬가지로 굉장히 정교하며 백과사전적이다. 두세번 정독할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오히려 술과 시간이란 점에서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이 떠오르기도 한다. 
'시간의 학대받는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취하라!  술이든 시이든 덕이든  무엇이든,  당신 마음대로.'



-<1940년 판본 화산 아래서>도 한 번 정도 발매되었던 모양인데 지금은 절판이라 구할 길이 없는거 같다. 다만 검색 등을 볼 때 대학 출판부에서 다시 출간할 예정인 듯 하니 출간되면 그것도 언젠간-

-영화도 있긴 한데 안 봤으므로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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