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델스탐과 친구들 독서일기-시


만델스탐의 경우 참으로 한글로도 그 성을 다양하게 표기된다.

만델스탐으로도 표기하기도 하며, <아무 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의 시선집의 경우, 만델슈탐이라고 표기하며, 또한 좀 더 러시아 원어에 가깝게 표현할 때엔 만젤쉬땀이라고 표기한다. 이름인 '오시프'의 경우도 오시프 혹은 오십 등 노어의 발음과 한국어/영어의 표기 차이로 인한 해프닝일 것이다.

만델스탐은 그 삶 자체만으로도 이미 신화가 된 시인인데, 이는 전적으로 그가 한 명의 순교자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흐마토바와 더불어 스탈린이 만든 대표적인 문학의 순교자 중 한 명이다)


스탈린 에피그램


아래로 나라를 느끼지 못한 채, 우리는 살아간다,
열 발자국 뒤에서 들리지 않는 우리말,

그리고 말하는 사람이 반만 있어도 충분한 곳,
그곳 크렘린의 산악인이 생각난다.

그의 통통한 손가락은 벌레처럼 기름기로 번들거리고
말은 무거운 저울추처럼 믿음직하다.

바퀴벌레 같은 콧수염은 웃고 있고
그가 신은 장화의 목 부분이 빛난다.

목이 가는 대장들의 무리가 그를 둘러싸고,
그는 반만이 인간인 자들의 시중을 받으며 놀고 있다.

누구는 휘파람을 불고, 누구는 야옹대고, 누구는 흐느껴 우는데
그 혼자만 지껄이고 명령을 내린다.

편자를 박아 넣듯이 그는 연달아 명령을 내린다,
누구는 살 속에, 누구는 이마에, 누구는 눈썹에, 누구는 눈에.

그의 사형은 무엇인가 - 산딸기요,
오세트인*의 넓은 가슴이다.

*카프카스

비록 만델스탐 본인은 지인들이 모인 조그만 자리에서 이 대담한 풍자 시를 낭독했다고 하지만,
불행히도 그의 지인 중 한 명이 그를 밀고하였고, 이 풍자로 그는 몰락한다. 말 그대로 목숨만 살려주는 상태로 고난받고,
원고는 불태워졌으며, 몇 년의 수난 끝에 간신히 풀려나자마자 찾아온 '대숙청'으로 굴라그에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심지어 우리는 그가 정확히 언제 죽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덤으로 만델스탐의 밀고자의 일화도 소비에트식 유머에 가까운데, 당시 그는 이미 숙청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고, 고발하지 않을 경우, 다른 누군가의 고발로 인하여 가중 처벌을 두려워하였기에 고발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숙청을 피하지 못하여 만델스탐보다도 일찍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러한 순교의 과정 자체가 그의 생을 비극적으로 만들고, 그의 창작 활동에 큰 영향을 주었기도 하지만, 비단 이러한 이유만으로 그가 오늘날 20세기 대표적 시인 중 한 명으로 뽑히는 것은 아닐 거다.
만델스탐은 계속 시를 썼고, 심지어 한 일화에 따르면, 죽는 순간까지도 입으로 시를 썼다고 한다. 

-오시프 만델슈탐
아무 것도 말할 필요가 없고,
아무 것도 배울 필요가 없으니,

아수처럼 어두운 영혼
참으로 슬프나 아름답다.

아무것도 배우고 싶지 않기에
아예 말할 줄도 모른다.

어린 돌고래처럼
깊은 잿빛 바다의 세상을 헤엄쳐 나간다.


여느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그가 중요시 여기는 것은 언어 그 자체다. 시는 언어로 쓰여지고, 그렇기에 '언어'를 고르는 곳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여기엔 침묵 또한 필수불가결하다.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 머무는 자리가 곧 침묵이다.
시인이 완전한 침묵을 하는 순간은 곧 그의 죽음이고, 이에 시인 또한 '죽음'과 '삶'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다. 이는 단순히 그가 숙청의 공포 속에서 살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젊은 시절 시를 썼을 때부터 줄곧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

(물론 그가 이러한 '죽음'의 공포에 완전히 초연하거나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유배 중 스탈린에 대한 찬가처럼 보이기도 하는 <스탈린 송가> 등을 쓴 것을 볼 때, 일단은 살기 위한 타협을 어느 정도 시도했는지도 모른다. 불행히도 큰 소용은 없었지만)

-오시프 만델슈탐

하나같이 똑같은 별빛을
난 싫어한다.
안녕한가, 나의 오래된 헛소리여 -
화살처럼 뾰족한 첨탑이여!

돌이여, 레이스가 되어라,
거미줄처럼 변하라
하늘의 텅 빈 가슴에
가는 바늘로 상처를 입혀라!

내 차례가 될 거야 - 
날개의 흔들림이 느껴진다.
그렇다 - 그러나 어디로 가는 걸까
살아 있는 사상의 화살은?

그렇잖으면, 시간과 길을 다 써 버린 후
나는 돌아올 거다.
거기서 - 난 사랑할 수 없었고,
여기서 - 난 사랑하는 일이 두렵기만 하다....


꽤나 특이한 점은 동시기 활동했던, 역시 위대한 러시아 시인 중 하나였던 파스테르나크의 경우, 젊을 적엔 '어렵게' 쓰다 노년에 갈수록 '쉽게' 쓰는 반면, 만델스탐은 오히려 역으로 점점 그 시들이 어려워진다. 파스테르나크가 만델스탐을 구하기 위해 스탈린과 면담을 하기도 하였지만, 어디까지나 오시프의 아내의 부탁에 의해서였고, 실제 둘은 그리 큰 친분은 없었다고 한다.

한역으론 <아무 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와 같은 시선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길이다.

<시간의 소음>과 같은 산문을 보면, 산문에도 굉장한 재능이 있는 작가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지 한역은 없는 듯 하다.
그의 아내가 쓴 회고록들도 기회가 되면 꼭 읽어봐야겠다.

배꽃과 벚꽃이 나를 노렸나 보다

배꽃과 벚꽃이 나를 노렸나 보다 -
산산이 부서져 버린 힘이지만 실수 없이 나를 때린다.

별들과 피어나는 꽃송이, 나뭇잎들과 별들 -
거기 이중 권력이란 대체 무언가? 진리는 어느 꽃가지에 있을까?

철봉으로 맞아 죽어 버린 하얗게 피어난 공기를
꽃으로 맹렬하게 때린다.

어울리지 못하는 두 향기의 달콤함 -
싸우고, 퍼지고- 혼탁해지고, 잘려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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