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나우스고르 <나의 투쟁> - 우리 시대의 프루스트여 독서일기-소설

크나우스고르의 <나의 투쟁> 연작은 런던에서부터 그 존재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었기에 한 번 읽어볼까, 마음 먹었지만, 나의 적인 귀차니즘으로 인하여 언젠가는 읽겠지, 란 안일한 생각으로 미루던 책이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한국에도 그 첫 권이 번역되었고, 결국 읽게 되었다.

다 읽은 감상은 다 필요없고, 내가 이걸 왜 이제야 읽었을까, 나머지 권들이 번역되려면 멀었으니 영역본들을 지-른다.


이미 누군가가 상투적으로 했겠지만, 나도 상투적으로 표현하련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아니겠는가.

아아 프루스트를 처음 본 독자의 심정을 알 것 같다.

물론 프루스트가 처음 나왔을 때만큼 <나의 투쟁>이 소설적으로 혁명적인 기법을 썼다거나, 혹은 21세기에 20세기의 향수를 일으키는 올-드한 골동품적 글이란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 작가의 자전적인 삶, 그리고 크고 아름다운 분량하면, 걍 상투적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언급하지 않겠는가? 작가 또한 좋아한다고 작중 쓰고 있으니.

이 책에 관한 평 중에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읽는다' 류의 이 책의 불가해함을 논하는 평이 많던데, 사뭇 이해는 안 가면서도, 알 것은 같다.

<나의 투쟁>은 어떤 면에선 너무 모든 것을 그대로 드러내기에, 역으로 불가해버리는 그런 케이스다. 한 찌질한 남자의 삶을 몇 천쪽 분량으로 읽는다고 생각해봐라, 그것도 당신은 그걸 즐겨하고 있다, 이 마조히스트 같으니!

아무튼 1권은 대충 요약하자면 엠생 알콜중독 애비 덕분에 자기도 생각적으로 아버지를 닮아 엠생이 되어버린 남자의 아버지에 관한 과거와 현재의 회상과 장례식이라 볼 수 있다. 찌질하지만 그렇기에 매력적이다.

왠지 모르게 카프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크나우스고르는 다른 작가들이 그러하듯 정상적인 인간은 아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자신과의 투쟁을 삶을 통하여 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자연스레 이 연작은 '나의 투쟁'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의 죽음과 대면하는 1권은 일종의 시발점이자 통과의례다.

<나의 투쟁>의 독특한 점이 있다면, 모든 자전적인 소설의 딜레마에 돌직구를 던진다는 점일 거다. 결국 소설이냐 자서전이냐의 그 불분명한 경계를, 작가는 날 것 그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면서 의도적으로 지워버리고, 삶의 늪으로 독자를 끌여들여 같이 천천히 밑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사뭇 평범해보일지도 모르는 아버지에 관한 회상담은 곧 아버지와의 불화와 알콜 중독, 그리고 결별과 죽음으로 인하여 인생의 악몽으로 변하고, 그 결과 크나우스고르의 '몰락'이 그려진다.

물론 이건 엄연히 소설이다. 작가가 그리는 살아있거나 죽은 자들은 본질적으로 작가에 의해 '가공될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니까. (물론 그러려면 다시 자서전이란 장르에 의문을 품어야겠지만, 그건 나중에 하자, 물론 안 하겠지만)


이미 말했듯이 작가는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므로 자연스레 '소설'은 때론 찌질해지고, 단조롭거나 미치광이의 독백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일까, 진실됨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서 우리에게 무언가 마음의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면, 작가로서 성공한 것일텐데.


어떤 면에서 우리는 크나우스고르라는 인간에 대해 읽지만, 정작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작가로서 크나우스고르일테니까. 그럼 어떤 인간에게 우리는 초점을 맞출까, 아마도 우리 자신?

미안하다, 그냥 상투적인 말을 해보고 싶었다.

아무튼 멋진 책이다. 질러라, 그리고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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