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크위크 페이퍼스> - 어느 오래된 유우머 독서일기-소설

찰스 디킨스의 장편 소설은 현재까진 몇 편 밖에 읽어보지 않았고, 그 중엔 <피크위크 클럽의 기록> 혹은 <피크위크 페이퍼스>는 포함되어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소설 자체의 명성은 잘 알고 있었다. 이른바 디킨스가 본격적으로 대작가의 길을 걷게 해준 출세작이자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대 연재소설붐의 효시와도 같은 작품이 아닌까? 덤으로 페르난두 페소아는 소아레스의 가면 아래, '내 인생 가장 큰 비극은 이미 피크위크 페이퍼스를 읽어버린 것이다' 고 불안의 책에서 중얼거리지 않았던가?

그런 의미에서 따스한 유우머와 익살로 가득찼을 거란 모종의 환상을 품은 채, 7,800여 쪽에 두꺼운 녀석을 눈앞에 두었을 때조차 그리 두렵진 않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거대한 분량은 나에게 하나의 폭력처럼 다가오더라, 심한 구타는 아니지만, 마치 간 보듯이, 장난삼아 툭툭 쳐서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것 같은 그러한 짜증을 말이다.

물론 피크위크 클럽의 유우머스러움이 현대에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그런 부류는 아니다. 종종 웃기며 오늘날에도 충분히 통용될만한 유머가 숨어있다. 그것 뿐인가, 디킨스는 이미 이 '장편'에서부터 사회 고발적인 부분도 다루고자 한다. 영국의 감옥과 재판 제도, 그리고 정치 등의 풍자는 어느 사회에서나 통할 법한 그런 익살스러운 풍자들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분량의 압박은 우리를 가로막는다.

주인공 피크위크 씨나 조금 더 후에 등장할 그의 샘 웰러는 돈 키호테 이후로 내려온, 돈키호테와 산초 판자의 원형을 갖춘 그런 인물들이다. 물론 피크위크는 조금 더 '속물적', 혹은 돈 키호테처럼 '미치진 않았다'는 점이 다르지만 말이다. 오히려, 유사-부자(父子) 관계에 가깝다.

이 시리즈는 엄밀히 따지면, 옴니버스에 좀 더 가깝다. 하나의 큰 플롯이 있다기보단, 그때그때의 피크위크 클럽의 기발한 일상과 기행을 다루며, 연결되는 부분 또한 일종의 땜방에 가깝다. 물론 책을 관통하는 몇 개의 굵직한 사건들은 존재는 하는 편이다. 그러나 우리가 디킨스하면 생각나는 정교한 플롯의 연재-대장편의 대가라고 하기엔, 피크위크는 그러한 대가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에 가깝게 느껴진다.
물론 디킨스의 인물들은 분명 매력적이다. 피크위크나 샘 뿐만 아니라, 모든 피크위크 클럽의 일원들이나, 심지어 악역들조차 인간미가 느껴지며 그 익살스러움을 더한다.

하지만 역시 아쉬운 것은 너무나도 길다는 점이 아닐까, 오히려 짧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완독을 향하는 도중에도 몇 번이고 망설임이 느껴질 정도로, 때론 단조롭고, 지루하기조차하다는 부분에서 오늘날의 독자에겐 조금 버거울 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마지막은 피크위크 씨 본인의 손 아래, 클럽의 해산으로 막을 내린다. 사실 읽는 내내 이 클럽 자체엔 별 다른 애착이 느껴지지 않았다. 몇몇 인물들에게만 집중할 뿐, 그저 도구에 가까웠다. 하지만 왜일까, 막상 이제까지 나를 상당부분 지루하게 만들었던 책이 드디어 끝난다는 기쁨보단, 클럽의 해산을 진심으로 슬퍼하는 피크위크의 쓸쓸함처럼 모종의 울적함마저 느껴진다.
이 소설엔 분명히 중요한 하이라이트가 몇 군데 있다. 아마도 내겐 이 피크위크 클럽의 해산 장면이 이 소설에서 가장 슬픈 부분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요 근래 읽은 소설들에서도 가장 슬픈 부분일지조차 모르겠다. 마치 있을 때엔 지루하지만, 막상 헤어지면 아쉬운 그런 친구와의 작별 같다고 해야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러한 울적함이 소설이 지닌 신비로움 중 하나일 거다. (사실 피크위크 클럽에 대한 감상조차 이 마지막 장면 덕분에 내가 지금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클럽은 사라져도, 피크위크 씨와 친구들은 삶을 계속 영위해나간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이후 삶에 대한 서술은 일종의 과거의 추억에 대한 향수와도 같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그들은 살아간다, 피크위크 클럽 없이도.


* 찰스 디킨스의 장편들을 이 기회에, 이전에 읽었던 놈들을 포함해서 완독해볼 계획이다. 시간을 보내기엔 좋다. 현재 읽는 녀석은 <블리크 하우스>다.

덧글

  • 2018/12/29 00:06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JHALOFF 2018/12/29 20:34 #

    당시엔 다른 디킨스의 소설들처럼 잡지 연재 후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저는 원서로 읽었는데 아직 피크위크 완역본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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