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디펜스> 3권 - 1인연극과 1인칭 감상-라이트노벨



<던전 디펜스> 3권입니다. 

작가에 대한 논란이 최근에 있었지만, 제가 언제 그런 논란을 신경썼습니까? 제 서재를 지금 한 번 쭉 훑어보니, 파시즘의 돼지였던 에즈라 파운드의 저서들이나, 터키인들을 모조리 죽이자는 슬라브수꼴 도스토예프스키가 보이군요. 여성을 증오하던 스트린드베리의 영역 희곡집이나 유대인놈들이 과연 사람인가? 히틀러 만만세를 외쳤던 윈-담 루이스의 책들도 거의 다 모아서 뿌듯합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언제 제가 그런거 신경썼습니까? 

문제는 소설이라고! 알게 뭐야, 예 제가 시대 착오적인 예술성애자이며 부도덕적이고 불건전한 12살 병약한 소년인 것은 사실이니, 인정할 수밖에 없겠죠.

아무튼 다시 던전 디펜스로 돌아가보자고요. <던전 디펜스> 시리즈가 사실상 라노베 판형으로 나온지도 벌써 3권째입니다. 어떤 면에선 이미 이야기는 궤도에 오른 거죠.

굳이 구질구질하게 내용 하나하나 열거하는 귀찮은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 이미 3권까지 읽을 독자라면, 그냥 반사적으로 지른 경우가 대다수겠죠.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던전 디펜스의 이야기가 작가의 폭주로 산으로 갈 가능성은 현재까진 없어보입니다, 여러분 던전 디펜스 시리즈는 안전합니다, 그러니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시면 됩니다. 편집자가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겠죠, 아마도?

이전에도 말했지만 사실상 독자들이 <던전 디펜스>를 읽는 이유, <던전 디펜스>에서 원하는 점, 그리고 작가가 정말로 잘 표현하는 점 등등, 결국 모든 것은 단 하나로 귀결됩니다. 단탈리안의 갑질이죠 (웃음).

사실상 던전 디펜스의 생명력은 단탈리안이라는 미치광이의 비극적이고 광기에 찬 일인연극이 펼쳐지는 것에 그 의의가 있겠죠. 물론 또한 제가 언제나 말했듯, 이는 작가의 폭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그런 점에선, 3권까지도 아직까지 그 폭주와 광기 사이의 적절한 균형이 이루어져서, 괜찮습니다. 제가 왜 자꾸 이걸 강조하냐면, 아무리봐도, 이게 던전 디펜스 시리즈, 아니 이 작가가 가장 주의해야할 점 중 하나라고 판단해서죠. 

물론 작가가 그냥 역사에 길이남을 천재 작가라면, 폭주해도, 평론가들이 핥는 그런 소설이 되겠지만, 우리 솔직해지자고요, 던전 디펜스가 그런 부류를 지향하는 소설은 일단은 아니잖아요? >_<

물론 이 균형에서 한 가지 불만 사항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상 현재까지 던전 디펜스에 나온 거의 모든 인물들이 단탈리안화되버렸습니다. 진짜로 단탈리안의 일인연극이 되어버렸어요. 

이 점에 관해선, 제 안에 동시에 상반된 두 가지 견해가 존재합니다.

비판적으로 보자면, 던전 디펜스가 아무리 단탈리안의 또라이짓을 보는 게 목적이라도, 일단은 한 세상의 다양한 이들의 다툼 속에서의 단탈리안의 또라이짓을 보는 건데, 전부 다 단탈리안이면, 이거 완전히 짜고 치는 고스톱되는 거 아닌가? 이건 엄연히 소설이고 다양한 인물들이 나와야할텐데, 전부 단탈리안이라면, 작가의 역량 부족이 아닐까?

또 다른 쪽으로 보자면, 어떤 면에선 갑질물적인 측면을 최대한 없애주지 않았을까, 만약 단탈리안만 단탈리안이고, 나머지 놈들이 전부 하하 호호 거리는 순진무구한 애들이라면, 결국 무방비한 애들을 패는 걸 보면서 기묘한 갑질적 쾌락만 느끼지 않겠는가, 또라이가 많으면 많을 수록 좋지 않을까? 애당초 소설 등장인물 중에 정상인 놈이 어디 있어, 그리고 어차피 한 작가가 창조할 수 있는 인물들은 작가의 한계를 못 벗어난다고, 이 정도는 허용점이야, 임마!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을 생각해봐, 전부 개또라이들만 나오지만, 누가 그런 문제를 생각해? 

어느 쪽이 이길지는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악령>은 비록 구조적인 결함이 심각하지만, 캐릭터빨로 승부하는 체고존엄 라이트노벨이고, 스타브로긴과 키릴로프는 문학 역사상 체고로 매력 쩌는 배드애스와 귀요미니 <악령> 꼭 읽어라, 두번 읽어라, <악령> 먼저 읽고, 던디를 읽든, 다른 책을 읽든 해라.

하지만 3권을 읽으면서도, 저는 <던전 디펜스> 구성의 본질적인 한계를 절실하게 느끼고 말았습니다.

이미 1권에서도 지적한 사항이지만, 대체 왜 여러 인물의 1인칭 시점을 넣으려고 한 것일까요? 

물론 의도 자체는 이해하겠습니다. 단탈리안의 1인칭으론 표현하기 힘든 한계가 있겠죠, 그건 이해해요, 다른 인물의 시점도 보여서, 좀 더 세계를 확장시키고, 이야기를 확장시키고 싶다는 건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정말로 진지하게, 한 가지 묻고 싶어요. 그게 꼭 다른 인물들의 1인칭 시점이어야했는가?

그냥 3인칭으로 했으면 되잖아, 왜 굳이 다른 인물의 시점이야? 왜죠? 대체 왜? 왜! 왜 왜!!

저는 이 던디를 읽을 때마다, 다른 인물의 1인칭 시점으로 변환되면, 항상 위화감을 느껴요. 항상 그 인물이 저에게 직접 말을 거는 것 같고, 또 처음부터, 안녕, 내 이름은 파이몬이야, 난 가슴이 크고, 마족들과 대화를 할 수 있어! 로 시작하는 것 같아요.

던전 디펜스가 메타-소설이었나요?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이건 아무리 봐도, 글의 문제라고, 차라리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했으면, 훨씬 좋았을 텐데,
하지만 이미 3권까지 이런 구성이 계속되었으니, 앞으로도 그러겠죠.

책 자체는 재미는 있어요. 그런데 대체 왜....왜 다중-1인칭 시점을 택한 거야, 대체 왜....!! 작가....너무나도 큰 실수를 했어.

아무튼 이걸로 3권에 대한 간략한 감상을 마칩니다.

3줄 요약
1. 일러가 좋다
2. <악령> 잘러라
3. <악령> 읽어라.

덧글

  • 비블리아 2016/08/02 02:15 # 답글

    세간에 들리는소문에 의하면 이 작품 자체는 평이 좋아서 다양한 방면으로 진출이 예정되어 기획되고 있었는데 그 작가의 넷상에 글 싸지른 거 한방 때문에 죄다 무산되었다는군요.
  • JHALOFF 2016/08/02 16:40 #

    논란이 크긴 했습니다.
  • 괴인 怪人 2016/08/02 07:27 # 답글

    12살 병약한 소년....????
  • JHALOFF 2016/08/02 16:40 #

    ㅇㅇ 사실.
  • 영원한 스탕달 신드롬 2016/08/02 07:36 # 삭제 답글

    12살 병약한 소년... ㅋㅋㅋ...
  • JHALOFF 2016/08/02 16:40 #

    사실입니다
  • Scarlett 2016/08/02 11:14 # 답글

    12살 병약한 소년에서 빵 터진게 저뿐만은 아니었네요 ㅋㅋㅋㅋㅋㅋ 수많은 예술작품 혹은 문화상품들을 접하다 보면 작가의 인성 따윈 신경 안 쓰는 경지에 이르게 되죠.ㅎㅎㅎ 대부준 보통 사람들은 그렇지않지만...
  • JHALOFF 2016/08/02 16:41 #

    결국 그것도 그 사람의 판단의 자유죠
  • 류오 2017/03/02 23:42 # 삭제 답글

    출판본을 보면서 착잡했던 건 등장인물들이 다 단탈리안 화되었다는 것. 극의 진행과 구성을 위해 캬릭터성을 다 죽인느낌.
  • jh 2017/05/10 20:30 # 삭제

    저도 읽으면서 그게 아쉬웠음...ㅠ
  • jh 2017/05/10 20:30 # 삭제

    저도 읽으면서 그게 아쉬웠음...ㅠ
  • 던디 2017/06/18 00:49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던디를 수없이 정독한 팬으로써 나름 글쟁이로써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현 게임디자이너) 좆문가로써 모두가 단탈리안화가 된 것에 대한 아쉬움에 대해 그럴수밖에 이유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던디 웹버전을 심도있게 읽어보셨다면 아시겠지만 던디의 새드엔딩이 가기까지 일종의 트리거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들이 수도없이 많이 있는데 이번 라노벨 버전에서는 그 모든 트리거를 교묘하게 빗겨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트리거 중 일부는 각각의 작중인물들의 성격이나 성향에 함정카드처럼 섞여있던 부분들이 있는데 이런 부분 또한 빗겨가는 과정에서 모두의 성격이 비슷해진 것입니다. 음... 간단하게 예를 들어 볼까요? 일단 첫째, 단탈리안의 경우 웹버전에선 평범한 사람이 게임 세계로 가는 내용이였죠 거기서 첫 살인을 준비 없이 하게 되고 중간의 라우라의 충고로 약자는 지기가 한 악행에 대해 자기합리화를 하는 것은 위악자라는 가치관을 가지게 되며 모든 악행에 대한 죄책감을 강박증에 걸린 것처럼 모두 안고 갑니다. 하지만 라노벨 버전에선 이미 수많은 납치 당하는 과정에서 살인을 경험해 봤고 그에 대한 치유와 확고한 신념을 세울 시간이 충분히 주어집니다. 그로 인해 이 죄책감으로 인한 트리거가 사라졌고요. 라피스 라줄리의 경우 웹버전에선 주인공의 이해자 위치였습니다만... 라노벨 버전에선 주인공의 동류로써 주인공에게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는 선에서 사랑을 하는 법을 가르쳐주게 됩니다. 이로인해 호감도에 의한 파멸 트리거도 빗겨갑니다. 라우라의 경우 웹버전에서는 주인공의 무분별한 선의로 인해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이 쌓이게 되고 이는 원래 역서대로 흘러갔을 때의 모습을 잃고 주인공에게 인정받는 것이 유일한 삶의 목적인 맹목적인 사랑으로 변질되게 되어 훗날 파국의 시작을 알리게 되는데 라노벨 버전에서는 라피스가 이를 미리 간파하고 정신을 붕괴시키려고 하다 주인공에게 저지당하는 과정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또한 트리거를 벗어나는 부분이라 볼 수 있겠네요. 그 외에도 수많은 트리거를 빗겨나가게 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작가가 생각하는 완성형 인간에 가까워지게 되고 말았는데 스토리 라인과 개연성을 지키면서 해피 엔딩으로 가기위해선 어쩔수 없던 부분이 아닌가 싶네요 참고로 웹버전은 5번은 정주행 하시는걸 추천합니다 양파 까듯이 까도까도 새로운 복선과 트리거가 눈에 보입니다. 전 3번째 읽었을 때 웹버전 던디가 액자식 구성이였다는 걸 깨달았죠(던전 안의 붕괴되가는 주인공 모습, 던전 밖의 가면을 쓴 주인공 모습, 이로 인해 갑작스럽게 주인공이 붕괴되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듬)
  • 던디 2017/06/18 01:00 # 삭제 답글

    이건 제 생각이지만 아무래도 라이트노벨이다보니 웹버전의 무거운 내용은 싹다 빼고 해피엔딩으로 가는 것 같네요(새드 엔딩 트리거를 전부 빗겨가고 있는 것을 보아...) 그리고 개인적으로 웹버전의 설정 붕괴 요소 몇가지를 라노벨로 가면서 고친 모습이 보이는데 이런 몇가지만 고쳐서 웹버전도 리워크 됬으면 좋겠어요... 라노벨 버전도 너무너무 좋고 인기도 더 많지만 웹버전의 수많은 복선과 사상과 사상의 교차, 사소하고 사소한 몇가지 잘못된 선택이 나비효과처럼 굴러와 파멸로 가는 과정이 정말 최고거든요. 몇번을 읽어도 최고입니다. 오히려 읽으면 읽을수록 내면의 숨겨진 스토리가 이해되면서 눈물을 자아내게 되죠 아! 여기서부터였구나 아! 이건 이래서 이랬던 거였겠구나 하면서요...
  • 던디 2017/06/18 01:08 # 삭제 답글

    흠냐 웹버전을 읽을 때 팁을 좀 드리자면 주인공의 인간관계를 주의 깊게 보십시오 주인공의 동맹관계에 있는 자들은 하나같이 주인공이 부족한 재능을 하나씩 가지고 있고 서로 선문답을 하는 과정을 통해 서로의 천재성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반면 주인공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자들은 하나같이 주인공과 유사점을 하나씩 가지고 있어 그를 설명하는 과정을 통해 간접적으로 주인공의 가치관에 대해 설명하죠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주인공의 위악자에 대한 가치관을 설명하기 위해 파이몬과 엘리자베트의 신념과 과거를 설명하였죠 파이몬은 위선자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대조를 시켰고 엘리자베트는 친동생을 죽이고 그걸 가슴에 담아 매일 악몽을 꾸는 과정을 통해 주인공도 환각과 같은 정신적 질환에 대한 복선을 깔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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