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사냥터 (1) <맥베스> - 시간을 망각하지 못하리라 프로젝트-셰익스피어


<맥베스>는 시간에 관한 비극이고, 현재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 갇혀 파멸할 수밖에 없다는 그런 숙명론적인 시간의 비극을 다루는 그러한 비극이다.

<언젠가는 그녀도 죽었어야할 것이다, 
 언젠가는 그 소식도 전해졌겠지.>

맥베스가 읊조리듯, 모든 것은 언제나는 일어나야할 일들이었다. 그러나 맥베스의 파멸은 이러한 미래를 불완전하게 엿봄으로서, 역설적으로 이루어지는 희랍식 신탁의 결과다.

이미 시작에서부터, 모든 것이 예정되어있음을 셰익스피어는 우리에게 강하게 암시한다. 천둥, 번개 그리고 세 마녀 등장과 함께 등장하는 세 마녀들의 대사들은 이미 맥베스의 파멸을 예견하며, 마녀들은 그저 그 사실을 '확인'하러 다시 모일 뿐이다.

이러한 불완전한 미래를 엿본 대가로 맥베스와 그의 레이디 맥베스는 마음 깊숙한 곳의 탐욕을 드러내고, 결국 미래를 현재로 확정시키기 위하여 행동하고 만다. 그리고 이러한 현재의 확정이 결국 그들의 파멸을 이끈다.

사실 '살인'은 맥베스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며, 오히려 극의 시작과 동시에 이러한 살육의 업적은 오히려 맥베스의 영광이 되고, 맥베스를 향한 칭송이 된다. 그는 반역자들을 무참히 처단하는 도살자이며 피비린내나는 전사다. 
이렇게 살인에 익숙할 그가 단순히 왕을 시해하고, 친구를 죽였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은 사뭇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이에 대한 해답은 충분히 제시된다.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을 모두 살해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아이가 없을 것이다,'란 맥더프의 절규처럼, "잠들지 못하리라! 맥베스는 잠을 살해하였으니, 맥베스는 잠들지 못하리라!"란 맥베스가 들은 목소리처럼, 맥베스는 '무고한 자'들을 살해하고, '달걀'처럼 그들을 깨부수며 늙고, 어린 자들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릴 수 있었는지, 결코 알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대가로 인하여, 맥베스와 아내는 '잠'을 맞이할 수 없는 벌을 받는다.

시간을 망각할 수 있는 방법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잠이고, 두번째는 죽음이다. 맥베스는 잠을 맞이할 수 없으므로, 자연스레 시간을 망각할 수 없는 저주를 받게 되고, 이는 현재의 그로 하여금 그의 발목을 끝없이 붙잡는 과거와 파멸을 예고하며 기어오는 미래 사이에 파묻치게 만든다.


<여기 아직도 피의 냄새가 남아있어. 아라비아의
모든 향수로도 이 작은 손의 냄새를 지울 수 없어, 아 아 아!>

결국 '시간'과 맞서 싸우기 위하여, 시간을 망각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 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맥베스와 그의 아내는 사뭇 다른 해결책을 선택한다. 레이디 맥베스는 죽음을 택하였으며, 맥베스는 예언이 어긋난 것을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미래에 저항하며 시간과 다시 한 번 대적하게 된다.
그리고 당당하게 파멸하며 이로서 극의 비극성은 더욱 강화된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은 순식간에, 우리가 붙잡을 수 없는 저 시간처럼 찰나와 같이 지나간다. 단적인 예로, 저 거대한 비극들인 <햄릿>이나 <리어왕>과 비교해도, 고작 절반에 불과한 분량에 지나지 않으며, 장면들은 많고, 각각의 장면들은 불과 수십 줄의 대사에 불과하다.

시간이 우리를 죽음으로 인도하듯, 현재는 찰나에 불과하며 과거와 미래는 끝없이 우리를 향해 기어오고, 내일은 그저 무의미한 읊조림에 불과하며 인생은 소리와 분노로 가득찬 어느 백치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불구할지라도, 우리는 언제나 시간과 맞서 싸워야한다, 설령 그것이 우리의 목을 자르고 조롱거리로 만들지라도.


* 셰익스피어의 사냥터는 다시 읽는 셰익스피어 감상 프로젝트입니다.


덧글

  • 류오 2017/03/03 00:02 # 삭제 답글

    She should have died hereafter;
    There would have been a time for such a word.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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