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잡념: 사무엘 베케트, <엔드게임> 독서일기-희곡

<불행보다 웃긴 것은 없어, 내가 보장하지. 그래, 그래, 그건 세계에서 가장 익살맞은 거야. 그래서 시작할 때, 우리는 웃고, 우리는 의지를 갖고 웃지.
하지만 그건 언제나 같은 거야. 그래, 우리가 너무나도 자주 듣는 웃긴 이야기처럼, 아직도 우리가 재밌다고 생각하지만, 더 이상 우리가 웃지 않는 것처럼.>


사무엘 베케트의 <엔드게임>은 그의 가장 유명한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어떠한 희망을 가지고, 앞으로 반복될 것임을 암시했다면, <엔드게임>에선 그 이후의 일, 고도를 기다리는 수많은 막이 흐른 후의 그러한 세계를 다룬다.

베케트는 원래 <고도를 기다리며>를 3막으로 기획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2막까지 쓰면서 그는 3막이 필요없음을 느꼈다. 2막까지 완성된 시점에서 이미 관객들에게 2막 이후에도 그들이 계속 고도를 기다릴 것임을 암시됨을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마치 1에다가 계속 1을 더하는 행위를 계속하면, 무한에 가까워지듯 말이다.

그러나 <엔드게임>에서 베케트는 그러한 노력조차 할 필요을 느끼지 못한다. 0에서 1이 된 순간, 이미 2까지 가는 무한한 시간이 흐름을 그는 느낀 것이다.


<끝은 시작 속에 있었지만, 그래도 넌 계속해.>

이 이야기는 이미 의미불명의 멸망한 세계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생존자는 단 4명에 불과하며, 실질적으론 단 두 사람의 투쟁이 그 중심이다.
멸망하였으나 모든 것이 아직은 사라지지 않은 폐허 속에서 왕으로 군림하는 햄, 그리고 그가 거두고, 키운 시종 클로브. 그 외 햄의 부모이자 쓰레기통에서 다리 없이 사는 넬과 네그가 있지만, 햄은 그들을 사실상 부모나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이미 세상은 <엔드게임>의 세상 속에선 무의미하다. 곧 클로브와 햄의 관계 자체가 곧 하나의 세계가 되며, 두 사람의 관계에 따라, 이미 멸망이 확정된 세계의 멸망이 완전히 확정되기 때문이다.


<난 당신이 내게 가르친 단어들을 사용해요. 만약 그것들이 더 이상 아무 의미 없다면, 내게 다른 걸 가르쳐줘요. 아니면 내가 침묵하게 놔두든가.> - 클로브

<네놈은 내게 언어를 가르쳤고, 내가 얻은 이익은 저주하는 법을 내가 안다는 거지. 내게 네 언어를 가르친 네놈은 저주나 받아라!> - 캘리번, 셰익스피어 <템페스트>

마치 프로스페로에게 항의하는 캘리번의 그 대사가 연상되듯, 클로브는 햄이라는 유사 부모, 혹은 주인 아래에서 지배받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서로 필요하다는 역설적인 면모가 있다.

햄은 장님이며, 몸을 움직일 수 없고, 클로브는 언제나 서있을 수밖에 없다.
자신을 왜 떠나지 않느냐는 햄의 질문에 클로브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대답하며, 자신을 왜 곁에 머물게 허락하냐는 클로브의 질문에 햄은 더 이상 사람이 없어서라고 답한다.

이렇게 서로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세계를 두 사람은 간신히 유지하고 있지만, 극의 핵심은 두 사람의 결별이 언제 이루어질까이다. 늙은 햄은 늘 진통제를 찾으며, 클로브는 비밀번호를 알아내어, 필요한 것을 훔치고 달아날 궁리만을 한다.

<네 머리를 써봐, 어서, 네 머리를 쓰라고, 넌 이 땅 위에 있어, 그리고 거기엔 어떤 대책도 없어!>

그러나 베케트가 그리는 종말론적 세계엔 어떠한 답이 없다. 끝은 예정되어있지만, 그 끝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 끝을 막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오게 만들 수도 없다. 그저 무의미하게 기다림과 또 기다림뿐.

<모든 삶들에서, 같은 질문들과 같은 답들.>

<오래된 막판 오랫동안 져왔고, 놀고 지며, 계속 지고 있어.>

승부의 끝, 체스에서 이미 승부가 났지만, 체크메이트 이전까지 무의미한 왕의 도피를 해야하는 그러한 게임처럼, 멸망한 세상의 왕 햄은 무의미한 몸짓을 반복하며 극 위에서 극이 끝날 때까지 모든 것을 계속한다.


<Me - to play. Old Stancher!

내가 - 놀아볼까. 오래된 방해꾼을!>


햄의 첫 등장 대사는 여러모로 번역하기 까다로운 대사다. 그는 다시 한 번 놀고자 한다, 혹은 자신에게 주어진 몰락한 왕을 연기하고자 한다. 이미 너무나도 오랫동안 상대해왔기에 친구처럼 느껴지는 자신의 오래되고, 친숙한 방해꾼과 함께, 혹은 자신이 스스로 그 방해꾼이 되거나.

고도도 더 이상 오지 않는 그러한 세계. 그럼에도 베케트는 이미 초반부터 여기에 대한 나름의 해법을 준다.

<불행보다 웃긴 것은 없어, 내가 보장하지. 그래, 그래, 그건 세계에서 가장 익살맞은 거야. 그래서 시작할 때, 우리는 웃고, 우리는 의지를 갖고 웃지.
하지만 그건 언제나 같은 거야. 그래, 우리가 너무나도 자주 듣는 웃긴 이야기처럼, 아직도 우리가 재밌다고 생각하지만, 더 이상 우리가 웃지 않는 것처럼.>

극에서 유일하게 안식인 '죽음'을 맞이한 넬은 말 그대로 불행에 대해 웃고, 또 웃는 법을 깨달았기에, 작가에 의해서 안식을 맞이하고, 퇴장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남은 이들은 어떠한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언제나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들은 그저 무의미한 동작을 반복할 것이다, 마치 불교 세계관의 끝없는 윤회처럼.


왕은 모든 것이 반복될 것을 암시하며 퇴장한다. 아니, 잠시 무대 위를 떠난다.

<오래된 방해꾼....넌...남아있어.>



덧글

  • CATHA 2017/04/03 01:48 # 삭제 답글

    쟐롭님 무탈히 잘 지내고 계신지요? 문득 근황을 여쭈려 들렀습니다. 어서 글 써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 JHALOFF 2017/08/03 14:51 #

    ㅎㅎ 감사합니다.
  • ㅇㅇ 2017/07/11 18:09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앤드게임 어디서 사셨음? 다절판이던데 컹's
  • JHALOFF 2017/08/03 14:51 #

    영역본입니다.
  • ㅇㅇ 2017/07/11 18:09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앤드게임 어디서 사셨음? 다절판이던데 컹's
  • ㅇㅇ 2017/07/11 18:09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앤드게임 어디서 사셨음? 다절판이던데 컹'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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