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트루드 스타인, <파우스투스 박사 전깃불을 밝히다> - 기계장치 속 영혼 독서일기-희곡




<그리고 독사가 저기 있어
그리고 빛이 저기 있어
누가 그녀에게 빛을 주었지
누구도 그러지 않았어
파우스투스 박사는 그의 영혼을 팔았고
그리하여 빛이 저기 왔어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영혼을 팔았지.>


많은 모더니스트들이 실험적이 풍부하며 언어를 가지고 놀고, 많은 독자들을 고통의 미로로 몰아넣지만, 개인적으로 그중 가장 으뜸은 거트루드 스타인이다.
어떤 의미론 차라리 조이스를 읽는게 스타인을 읽는 것보다 덜 피곤하고, 더 쉽게 느껴질 때도 있다. 

사실 스타인은 '어려운 단어'를 거의 쓰지 않는다. 또한 그녀의 문장 자체도 단순하다. 문제가 있다면 스타인은 이런 단순한 단어와 문장들을 미묘하게 변주하고, 반복한다. 
그녀의 유명한 문장으로 <Rose is a rose is a rose>가 있다. 그녀도 마음에 들었는지 자주 변형시키는 문장이기도 한데, 저게 단순히 장미는 장미는 장미다 정도로 번역될 수도 없는 것이 '로즈'란 이름이 '로즈'이고 그게 곧 '장미'인지 아니면 단순히 장미는 장미는 장미다 인지 뉘앙스가 중첩되버린다. 
물론 이런 문장들 자체는 읽는 재미는 있다. 읽다보면 운율도 있고 다 좋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는가, 스타인은 '반복'한다고. 
<A가 B에 있다. A가 C에 있다. A가 D에 있지 않다 ------> 이런 문장이 몇 백 쪽에 걸쳐지는 순간 독자의 정신은 날아간다.

참고로 그녀의 대작 <미국인의 형성>은 약 1200쪽 분량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타인의 실험적인 오페라 <파우스투스 박사 전깃불을 밝히다>는 분량도 적절하면서 내용과 실험 양쪽 모두를 만족시킬만한 좋은 극이다.
(원문의 'lights the lights'에서 이미 반복과 변주가 느껴지지 않는가?)

파우스트 박사에 관한 전설은 이미 사골이 되어버렸지만 그 국물은 오늘날까지도 계속 나오고 있다. 그러니 소재를 재탕한다고 스타인을 비판할 순 없을 거다.
어떤 의미에서 스타인의 파우스트는 가장 암울한 파우스트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적어도 구원이라도 받고, 말로우의 파우스트는 지옥에라도 끌려가는 '끝'을 보지만, 스타인의 파우스투스 박사는 흔히 말하는 현대 기계문명에 잡아먹힌 나약한 인간이다. 
파우스트 전설의 신에 도전하는 이성을 통하여 전깃불을 만들었지만, 거기에서 끝나버린 인간.

<하지만 난 그걸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악마는 그걸 가져갔고
넌 그걸 원하지도 않았지만
난 그걸 만드려고 혼을 팔았지.>

극이 시작되면, 무엇보다도 스타인만의 독특한 해석이 시작되는데, 바로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의 관계다 

<파우스투스 박사: 
이 악마 악마 따위 악마가 있든 내가 알게 뭔가

메피스토펠레스: 
하지만 친애하는 파우스투스 박사 나는 여기 있어요

파우스투스 박사:  
내가 신경쓰는건 이곳도 그곳도 없다는 것. 나는 누구인가. 
나는 파우스투스 박사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너는 네 덕분이라 하지만 아니지 
내가 서둘지 않고 내 시간만 챙겼다면 나는 이 백색 전깃불을 만들고 대낮의 빛과 밤의 빛도 만들었겠지 
내가 무엇을 했는가 나는 너란 불쌍한 악마를 본다 나는 너를 보고 나는 속았고 또 나는 불쌍한 악마를 믿었고 
나는 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나는 악마에게 유혹당했다고 생각했고 
악마가 네게 말해주기 전까지 어떤 유혹에도 홀리지 않았을 것이라 난 알지. 
너는 내 영혼을 원했지 알게 뭔가 너는 내 영혼을 무엇 때문에 원했을까 내게 정녕 영혼이 있는지 네가 어떻게 알까 > 

(파우스투스의 대사는 임의로 끊었다. 사실 전부 한 문단이며 한 줄에 가깝다.)

스타인의 파우스트에선 '악마와의 계약' 자체는 무의미하다. 파우스트는 이미 있는지도 의심되는 영혼을 팔고 현대의 전깃불을 밝혔지만, 그는 더 이상 악마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악마 자체에 대해서 회의하고, 무기력하게 그를 거부한다.
오히려 메피스토가 자신이 존재함을 끝없이 피력하며 파우스트에게 매달린다.

파우스트는 전설 속 신에게 도전하는 인간이라기보단 현대 문명을 건설한 후 그 문명 속에 갇힌 인간에 가깝다. 
'모던'과 '전깃불'은 태양을 거부하고, 신과 악마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러한 스타인이 해석하는 관계는 흔히 이야기되는 '인간을 속이는 악마와 속는 인간'의 관계를 역전시킨다.

<메피스토: '당신은 날 속였어.'
파우스투스: '난 그러지 않았어.'
메피스토: '당신은 날 속였고 난 언제나 속았어.'
파우스투스:'넌 나를 속였고 나는 결코 속지 않았어.'>

물론 스타인의 파우스투스 박사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스타인의 실험극은 파우스트 전설과 선대 작가들이 이루어놓은 요소들을 뒤섞고, 거기에서 현대의 부조리한 인간상을 그려내는 것에 가깝다. 물론 파우스트 계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두 작품, 괴테의 파우스트와 말로우의 파우스투스 박사 모두 사용된다.


<파우스투스:
너 불쌍한 악마야 나는 너를 보고 나는 속았고 난 믿었지 불쌍한 악마야 나는 생각했지 내가 널 필요하다고 그래서 나는 생각했지
나는 악마에게 유혹당했고 나는 알고 있었지 악마가 그렇다고 말하기 전까지 유혹은 유혹이 아니라고. 
넌 내 영혼을 원했지 대체 뭐 때문에 넌 내 영혼을 원한 건지, 나에게 영혼이 있는지 넌 어떻게 알지, 
넌 말하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지
하지만 넌 악마고 모두가 악마가 그저 거짓말이란 걸 알지, 
그러니 넌 어떻게 알지 내가 알고 있는지 내게 팔 영혼이 있는지 넌 어떻게 알까, 
악마 양반 오 악마 양반 네가 어떻게 말해줄까>

파우스트 전설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신과 악마의 대립은 스타인의 파우스트에선 부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마르가리테/헬레나, 즉 파우스트의 애인과 파우스트의 대립이 더욱 부각된다.

스타인이 해석하는 파우스트의 또 다른 특이점은 파우스트의 두 여인, 마르가리테와 헬레나을 '한 명'으로 합쳐놓았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엔 단순히 괴테나 파우스트 전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다'는 스타인의 또 다른 소설 속의 분열된 자아를 가진 여인이며 혹은 그녀의 애인일 수도 있다. 모든 작가들이 그렇듯 그녀 또한 자전적인 요소를 섞어넣는다.

<마르가리테 아이다/헬레나 애나벨:
나는 나 그리고 내 이름은 마르가리테 아이다 그리고 헬레나 애나벨, 그러면 오 그러면 난 할 수 있지 그래 난 할 수 있지 난 할 수 있어 울 수 있어 하지만 왜 왜 내가 울어야지>

물론 무대의 연출자의 재량에 따라 마르가리테 아이다/헬레나 애나벨은 하나일 수도, 둘이거나 셋일 수도 있다. 애당초 텍스트는 지극히 실험적이며 일반적인 극본의 구성을 따르지 않는다.

<메피스토:죄를 범해
파우스투스:무슨 죄 영혼 없는 내가 어떻게 죄를 범해
메피스토:아무거나 죽여
파우스투스:죽여
메피스토:그래 무언가를 죽여 오 그래 아무거나 죽여 그래 그게 나야 속아온 나 악마 누구도 속일 수 없지 그래 그게 나야 나 계속 속아왔지>

사실 이 희곡은 현대로 배경을 옮긴 에덴의 아담과 이브의 우화가 아닐까 의심되기도 한다. 독사가 등장하고, 전깃불은 마치 선악과도 같으며 사탄도 있고, 무엇보다 아담과 이브에 걸맞는 파우스트와 마르가리테/헬레나가 있다. 
차이가 있다면 선악과를 홀로 먹은 파우스트는 홀로 벌을 받는다.

때론 의미없어보이는 장면이나 난해한 장면들이 뒤섞이면서 '영혼 없는' 파우스투스 박사는 무언가 시도를 한다. 그러나 그 시도 자체도 결국 전깃불을 밝히는 것에 그치며 그의 애처로운 목소리만 무대 위에 남는다.

<'날 혼자 내버려둬 내가 혼자 있게 내버려둬, 개와 소년 소년과 개야 날 내버려둬 내가 혼자 있게 내버려둬.'

'제발 독사 씨 내 말을 들어줘 그는 그고 그녀는 그녀고 우리는 우리야 제발 독사 씨 내 말을 들어줘.'>

이 희곡은 전깃불을 만들어 도시를 비추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비추지 못하여 몰락한 한 인간의 읊조림에 가깝다.

상투적인 표현으로 현대 기술문명에 분열된 인간상을 묘사했다로 부를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읽거나 공연을 보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한 구석은 많다. 
물론 이건 모든 쓰여진 것에 해당될지도 모른다.




이미 뛰어난 천재들이 사용한 소재를 다시 어떻게 효과적으로 재해석하고,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을지 의심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답을 줄 수 있다, 고 말하고 싶지만 스타인도 천재므로 그다지 위로는 되지 않는다.

아무튼 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에 드는 작품이고 언젠가 끄적이려고 마음만 먹었다가 드디어 아주 조금 무언가 끄적인다.

언젠가는 저 괴물 같은 <미국인의 형성>에 관해서도 끄적일 여력이 되기를.

P.S. 
실험적인 극이지만 요근래에도 연출은 되고 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뮤지컬 버전이다. 
놀랄지 모르지만, 이건 원래 오페라 대본이다.

링크:

첫 5분만 봐도 무방할 거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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