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악령>, 도스토예프스키 독서일기-소설

 

 

도스토예프스키의 최고 걸작은 무엇인가, 란 질문에 우리는 의심의 여지없이 그것은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라고 밖에 답해야한다. 여기엔 이견이 없다. 만약 당신이 다른 의견을 말한다면, 당신은 틀렸다.” 이는 우리 도스토예프스키를 신봉하는 자들에게 절대적인 진리일 거다. (물론 내가 오만하다고 비판할 순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악령>은 결코 까라마조프를 넘을 수 없다. 이미 작가로서의 모든 역량은 까라마조프에서 완성되었으니까.

 

다만 <악령>은 까라마조프가 비교할 수 없는 소설이기도 하다. <까라마조프>가 도스토예프스키의 모든 역량이 집중되었다면, <악령>은 어떤 의미론 정반대에 서있으면서 동시에 같은 위치에 있는 작품이다.

 

내가 누누이 강조해왔지만, <악령>은 한 작가의 장점과 단점이 모두 극대화되어있는 소설이다. 따라서 <악령>은 한 작가가 낳을 수 있는 괴물 같은 존재다.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그런 존재.

 

단점부터 다시 살펴보자

 

<악령>에선 한 찌질한 인간의 옹졸함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본디 찌찔한 감성의 작가다. 그는 찌질하다. 우리는 이미 <지하인>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학창 시절 동료들이 예의상 초대하는 걸 정말로 참여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안다. 그러나 <악령>에선 그런 구질구레한 감성을 작가가 직접 표출한다.

 

투르게네프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을 소설 속 인물로 표출한다든가 슬라브주의에 반하는 사상가들을 모욕하고 풍자하는 행위는 어떤 말로도 미화될 수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웃음만을 느낄 뿐이다.

 

여기에 더하여 빠른 집필을 위하여 퇴고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난잡함은 혼란만 줄 뿐이다. 태초부터 프로파간다로 만들어진 작품의 한계마저 느껴진다.

 

그럼에도 <악령>은 왜 위대할까? (만약 동의하지 않는다면, 왜 중요한가로 바꾸자)

 

이는 전적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장점의 극대화, 즉 관념으로 이루어진 인물의 힘에 달렸고, 그 이름은 스타브로긴이다.

 

니콜라이 프세볼로도비치 스타브로긴의 유래를 탐구하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 작가에겐 하나의 이야기만이 존재하며, 우리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을 통하여 그의 과거와 미래를 쉽게 추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브로긴이 기나긴 그의 인물상에서 유별난 위치에 있음을 부정하긴 어렵다.

 

스타브로긴은 말 그대로 모든 걸 담은 혼돈 그 자체다. 따라서 그로부터 슬라브주의를 맹신하는 샤토프나 무정부주의와 혁명을 긍정하는 베르호벤스키, 혹은 무신론의 키릴로프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말 그대로 모든 걸 삼키고, 자신마저도 삼킨다.

 

이는 그라는 인물이 가지는 성격조차도 그러하다.

 

<악령>에서 우리는 시종일관 스타브로긴을 직접적으로 볼 일이 거의 없다. 그런 기회조차 작가 본인이 따로 빼놓은 <스타브로긴의 고백>/혹은 <찌혼의 암자>에서 얼핏 볼 뿐이다.

 

스타브로긴의 뿌리를 이루는 가장 큰 뿌리에선 라스콜리니코프, 이반 까라마조프와 같은 인물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스타브로긴과 명백히 다르다. 이들은 광대짓을 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미래에 광대가 있고, 제삼자의 입장에서 광대로 보일지언정 스스로가 광대란 자각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 광대 짓을 자처하는 스타브로긴은 이들과는 다르다.

 

그러면서도 스타브로긴의 또 다른 뿌리, 즉 스비드리가일로프, 마르멜라도프, 표도르 까라마조프와 같은 악덕으로 가득 찬 광대들과 스타브로긴은 사뭇 다르다. 그들과 비교하기에 스타브로긴은 오히려 냉소적이고 지식인에 가까우니까.

 

스타브로긴은 혼돈 그 자체다.

 

그는 매력적이다. <악령>의 모든 인물은 결국 그에게 홀려있고, 심지어 독자마저도 홀릴 것이다. 하지만 그는 혐오스런 인물이다. 그는 방탕하고, 무고한 자들을 괴롭히며 심지어 무고한 이를 능욕하고 자살을 방조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라는 혼돈이 가진 특성 때문에, 과연 그가 스스로 고백한 죄가 정말로 있었던 일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고, 그라는 광대에게 놀아나는 게 아닐지 고뇌하게 된다.

 

아직까지도 나는 이 인물을 파악할 수 없다. 읽을 때마다 인상이 바뀌는 혼돈 그 자체인 관념을 이해하기엔 아직 너무나도 부족한지도 모른다. 어떤 의미론 도스토에프스키의 모든 인물상이 그에게 담겨있으니까.

 

물론 스타브로긴에게 매력이나 혼란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을 거다. 그럼에도 <악령> 자체는 소설적으로 매력적인 인물들로 가득 찬 소설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하나하나 빼놓을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언제나 <악령>을 읽으며 스타브로긴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그는 현실에선 용납될 수 없는 인간이고 작가의 심판을 받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관념이다.

 

어쩌면 그를 조금이라도 해석하거나 이해하는 것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의 핵심을 꿰뚫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이 감상 자체도 <악령>의 영향인지 두서없이 산만함 그 자체다.

 

 


덧글

  • Zeps 2018/03/26 02:17 # 답글

    이글루를 버리고 탈출한줄 알았더니
  • JHALOFF 2018/03/26 16:21 #

    그냥 방치했지만 그래도 버리진 않았습니다
  • 지노 2018/03/26 15:06 # 답글

    흥미있게 읽고 갑니다.^^ 다시 얼음집으로 돌아오신건가요?
  • JHALOFF 2018/03/26 16:21 #

    꾸준히는 몰라도 이따금 쓸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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