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닐 하름스와 친구들 -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마지막 후예들 독서일기-소설



<오늘 나는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 아무래도 좋다.>
-다닐 하름스, 청색 노트 中


서양 문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상대적으로 동유럽권이 후발주자라는 인상을 지우긴 힘들다. 아무래도 문화예술 자체가 그 나라의 발전과 밀접한 영향이 있기에 그런 거겠지만, 서유럽에서 발전한 양상이 동구권으로 뒤늦게 수입되어 후발주자가 되는 부분이 적진 않을 거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서유럽과 비교하여 기괴한 사회의 구조 때문인지, 때때론 오히려 기이한 선구자들이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 동유럽의 문학가들인데, 오늘 이야기할 다닐 하름스와 그의 오베리우(OBEIRU) 또한 마찬가지다.
러시아는 언제나 러시아였고, 기묘했다. 어떤 점에서나. 농노제를 19세기까지 유지하는 것으로 대표되는 기괴함 속에서 러시아-소련에서 미래주의와 아방가르드가 흥했다는 것은 기이하지만, 왠지 모르게 러시아라면 납득이 가기도 한다.
다닐 하름스는 오늘날 부조리극와 부조리문학의 선구자 중 하나로 평가되는 작가지만, 이 시대 많은 소련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숙청당했기에 오랫동안 잊혀졌다, 90년대부터 발굴되어 영미권까지 알려진 작가다. 그가 만들었던 ‘진실 된 예술을 위한 예술가들의 모임’인 <오베리우>는 제정 러시아 말기부터 시작된 러시아 아방가르드 문학의 마지막 세대를 장식했던 모임이었고, 이들을 끝으론 사실상 소련의 아방가르드의 맥은 끊긴다.

하름스의 선구자는 그리 멀진 않다. 마야꼬프스키와 같이 혁명에 동참하였던 미래주의자들과 벨리미르 흐벨브니코프와 같은 인공언어를 통한 실험을 하려는 선구자들까지, 하름스는 이런 이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그 다음 세대를 이어간다.
<눈도, 귀도 없는 붉은 머리 남자가 있었다. 사실 머리카락도 없었으므로 붉은 머리라고 그냥 이름 붙였다.
그는 입이 없었으므로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코도 없었다. 심지어 그에겐 팔다리도 없었다. 그는 내장이 없었고, 등도 없었으며 척추도 없었고, 안엔 아무것도 없었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사실 우리는 우리가 무얼 이야기하는지조차 모른다.

그러니 그에 대해선 더 이야기하지 않는 게 좋을듯하다.>
-다닐 하름스, 청색 노트 no. 10


‘미래주의’와도 연관이 되듯, 아니, 사실 이 시기 모든 새로움을 원하는 예술가들이 그러하듯 하름스 또한 기존의 도구로 현실을 표현하는 것에 한계를 절실히 느꼈고, 자연스레 다른 방식을 모색하게 된다. 
위에 인용한 그의 짧은 단편처럼, 하름스가 주목하는 것은 반-이성이다. 단순히 논리와 이성으로 설명되기엔 무언가 불완전하고 부족한 것 같은 현실 속에서 그는 오늘날 부조리로 불릴 만한 요소들을 발굴한다. 언어라는 도구로 온전하게 무언가를 담을 수 있는가? 그는 이 시대 예술가나 철학자들이 했을 법한 고민을 공유한다 (그가 학생이던 시기가 러시아 혁명기였음을 감안하면 더더욱 세상은 부자연스럽고 혼란스럽게 느껴졌을 거다)
자연스럽게 그의 소설이나 희곡 속 대화들은 일상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서로 닿을 수 없고, 때론 무의미한 말장난으로 이어진다. (‘오베리우’라는 명칭조차 말장난이 들어가 있다는데, 몇몇 글자는 약어와 관계없이 그저 삽입된 글자라고 한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흐벨브니코프와 같은 선배와 달리, 그들은 자신들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눈을 돌리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사람들에게 낡은 방식을 버리고, 조금 더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도구를 통하여 보여주고자 그들은 노력한다.

물론 우리의 스탈린 동지와 소비에트 당국의 눈에 이들은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자들이자 미래주의와 아방가르드주의자들과 다를 바가 없는 엘리트주의자들이나 반동에 불과했고, 자연스럽게 이들은 20-30년대를 걸쳐 하나둘 씩 숙청된다. 감옥에 갇힌 하름스의 경우, 레닌그라드 공방전 기간 동안 감옥에서 아사한다.

사실 부조리 문학이나 부조리극의 선구자 중 하나로 평가되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짧은 말장난이나 황당함으로 치부할 거다. 긴 작품조차 친숙해지기 어려운데, 붙잡기도 힘든 짧은 작품들이 대부분이라면 더더욱.
물론 이런 류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그 선구자 중 하나, 그것도 기괴한 땅에서 자생한 자들의 세계를 보는 것도 좋을 거다.

사실 <오베리우> 자체의 작품은 다닐 하름스의 것이 대부분이고, 그 외엔 그의 주 동료였던 베젠스키(혹은 브베젠스키)의 것이 아주 조금 영역되었을 정도라, 실제 러시아 전공자가 아닌 이상, 그 실체를 알긴 어려울 듯싶다.
하름스의 경우에도 한국에 짧은 작품집이 번역되었었지만, 절판된지 오래다.

아직 러시아 아방가르드주의자들의 세계를 제대로 알기엔 조금 이를지도 모르겠다.


여담이지만 스탈린 동무는 정말로 자애로워 러시아, 조지아, 우크라이나, 그리고 이디쉬 문학 전공자들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증가시켜주었다. 연구할 거리를 줄여주는 방향으로. 20-40년대 소련에서 생을 마감한 예술가들의 사인을 살펴보면, 딱 네 가지다: 옥사, 총살, 굴라그, 숙청의 두려움으로 인한 자살. 
물론 살아있는 이들도 침묵당한 경우가 대다수지만.


오베리우 앤솔로지의 경우 <Oberiu: An Anthology of Russian Absurdism>가 있고,

하름스의 경우 <Today I Wrote Nothing>과 <I am a Phenomenon Quite out of the Ordinary> 영역본 등이 있다.

하름스와 베젠스키의 작품 선집 영역본으론 <The Man with the Black Coat>이 있지만, 절판되었고, <Russia's Lost Literature of the Absurd>로 재간되었는데, 확인해보니 몇 작품이 빠져있어 아쉽다. 읽을 의향이 있다면 유념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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