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시연, <무저갱> - 악마를 보았다 독서일기-소설



이 글을 읽을 사람에겐 <흐리호우> 시리즈로 유명한 반시연 작가의 신작 <무저갱>입니다.

사실 저는 모든 작가는 결국 각자 한 가지 이야기 밖에 쓸 수 없는 사람이고, 그의 다양해 보이는 전집도 결국 한 이야기로 환원할 수 있고 믿는 환원주의자지만, 조금 더 다양성을 존중해보고자 합니다.
반시연 작가의 라이트노벨에서부터 소설까지 출판된 글들을 살펴보면, ‘느와르’로 분류할 수 있는 이야기론 <흐리호우> 시리즈, <사가>, 그리고 이번에 나온 <무저갱>, 이렇게 3 편을 넣을 수 있을 겁니다. (<우울한 저녁의 괴들>은 애석하게도 출판본이 없으니 생략합시다) 이들의 공통점으론 ‘부산’ 배경과 요소, 공권력이 아닌 폭력을 이용한 해결사가 있겠네요.

출판사 포맷의 차이도 있겠지만, <무저갱>은 그러한 다른 작들과도 비교해도 월등히 폭력적입니다. 정확하게는 예전엔 어쩔 수 없니 블러 처리를 했던 것들이 이번엔 무삭제판으로 공개되었다, 정도로 보면 되겠네요.
반시연 작가의 세계는 말 그대로 ‘무저갱’ 같습니다. 평범한 사람들도 물론 있지만, 그들은 소수고, 모든 것은 타락했으며, 선한 자들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박해받죠. 그리고 그러한 도움조차 합법적이고 선할 수 없습니다. 어떤 신념 아래 움직이지만, 그것도 자세히 보면, 어찌되었든 비즈니스니까요. 딱히 그걸 행하는 대리자들이 부정하거나 미화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이런 방법이 매우 효과적이고, 어쩔 때는 유일하기도 하다는 걸 알려주고 제안할 뿐이죠.
특히나 <무저갱>은 더욱 그렇습니다. 물론 이렇게 느껴지는 건 앞서 말했던 것처럼 그 수위의 리미트가 없어져서 그럴 겁니다. 흐리호우 시리즈에서부터 따라온 독자, 혹은 더 이전 작부터 따라온 독자라면 알 겁니다, 작가가 쉽게 변하지 않듯 원래 이랬어요.

<무저갱>은 책의 소개를 찾아보시면 알겠지만, 출소하는 희대의 살인마를 둘러싼 여러 관점의 복수극입니다. 극악한 범죄자에 관한 뉴스를 보면서 꽤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그런 감정이 이 소설의 원류와도 같죠.
소설의 상당부분은 이야기 시작 전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용도로 할애됩니다. 꽤나 밀도가 높게 느껴져요. 제가 ‘상당부분’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페이지 수를 확인해보면 생각보다 적습니다. 그 밀도감 때문에 분량이 상당하다고 느꼈겠죠.
그 후 본격적인 계획이 시작되고, 여러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중간부터는 조금 의아하게 됩니다. 무언가 내가 놓친 게 있나? 혹시나 내가 책을 대충 넘긴 부분이 있었나? 아니면 작가의 사소한 실수? 그런 의문을 느낀다면 책을 끝까지 읽으면 됩니다.
반시연 작가의 <사가>나 다른 작들 같은 경우도 반전이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대개 에피소드 내에서의 반전, 짧고 강렬한 류가 대부분이었죠. 그런데 <무저갱>은 장편으로서의 거대한 반전을 능숙하게 넣습니다. 책 띠지에 ‘치밀한 반전’을 강조했으니까 제가 스포일러하는 건 아닙니다.  
반시연 작가의 장점은 우선 그 대사와 문장 처리에 있을 겁니다. 읽기 수월하고 분위기에 어울린다면 그거야말로 어울리는 문장 아니겠습니까? 이런 느와르 류 이야기를 조이스식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몇 뱍 쪽 짜리 한 문단을 쓴다면, 그런 걸 누가 읽겠어요. 아 근데 이건 좀 끌리는데. 아무튼 이미 이 작가를 즐겁게 읽었던 독자라면 이번작도 따라가도 문제없을 겁니다. 다만 신규독자의 문제인데, 앞서 말했듯 일단 폭력성이 가장 짙은 소설이긴 합니다. 그런데 요즘 같은 세상에 활자로 묘사되는 폭력 좀 본다고 벌벌 떠는 사람은 없을 테니 큰 상관은 없겠네요.

또 좋아하는 말은 아니지만, 요즘 말론 ‘사이다’적인 내용도 장점으로 뽑는 사람도 있겠죠. 말했듯 법이 아닌, 폭력으로 해결하는 해결사. 거기에 시원하게 이어지는 악인에 대한 복수와 심판. 다만 <사가> 나 다른 작들에선 그런 과정에서도 약간 허무한(?) 코미디가 있는데 이번 작은 그런 웃음은 거의 없습니다. 조금 더 무미건조하고, 진중한 만큼 폭력도 늘었죠.
흐리호우 시리즈는 호우 BL하렘물인 만큼 캐릭터 소설이었는데, <무저갱>은 캐릭터보단 이야기가 더 앞섭니다. 

그나저나 이 책은 사실 장르를 무어라고 해야 할지 개 나인적으론 좀 긴가민가합니다. 한국적인 느와르이긴 한데, 흔히 한국 영화 느와르처럼 부패한 공권력이라든지 등은 나오지 않거든요. 어떤 의미에서 여기오는 ‘회사’ 등은 지극히 비현실적인 요소입니다. 신파적 요소가 없는 거 같지만, 그러면서도 있는 거 같기도 하고, 하드보일드의 주인공 같지만, 그러면서도 좀 아닌 거 같기도 하고. 계속 긴가민가한 문제뿐이네요. 물론 중요하진 않습니다. 그런 정확한 라벨링에 관심을 가지는 건 변태들뿐이겠죠.

여담이지만 ‘무저갱’이나 소설 초반에 등장하는 상징이 될 법한 말들 덕분에 종교적인 상징들도 꽤나 가득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딱히 그렇진 않습니다. 정확하게는 큰 관심을 두진 않죠. 이런 요소들이 엮였다면, 재밌을 거 같기도 하지만, 그러면 아예 다른 소설이 되겠네요. 그건 그래도 좀 가까운 <사가>를 읽읍시다.

또 또 여담이지만, 이제까지 제가 읽은 반시연 작가의 책들을 보면, 어찌되었든 작가는 해피엔딩을 지향하는 사람이고, 또 굉장히 밝고 긍정적입니다. 망가진 자는 다시 상승하고, 죄 지은 짐승은 죽고, 불안한 자는 안식을 얻죠. 개인적으론 아예 망가지는 이야기도 보고 싶네요. 

이상 <무저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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