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미국) 남부 고딕'이라 불리는 일련의 문학 작품들은 유럽에서 시작된 고딕에서 기원했겠지만, 생각해보면 정말로 이들이 '고딕'인지 의심하게 된다. 유럽인들이 흡혈귀나 늑대인간, 혹은 초상화에서 걸어나오는 인물 등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괴물들을 동원하여 고딕을 만들어냈다면, 남부 고딕의 작가들은 그저 '충실하게 남부를 묘사할 뿐,' 그들 대부분은 그런 괴물들에 기대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독자가 고딕이라 생각할 법한 세계를 만들어낸다.
플래너리 오코너는 이러한 포크너나 테네시 윌리엄스 등이 속한 남부 고딕의 핵심 작가 중 하나이자 (아마도) 가장 뛰어난 미국 단편 작가이기도 하다. 그녀의 장편들도 나쁘진 않지만, 역시나 단편에 비할 수 없으니 어디까지나 그녀의 핵심은 단편이고, 또 단편이다.
그녀의 이력에서 특히나 눈여겨봐야할 점은 그녀의 미국 남부 출신의 '카톨릭'이란 점인데, 특히나 보수적인 개신교의 본고장 남부에서 소수에 속하는 '카톨릭'이란 점이 그녀의 기괴한 세상을 만들어주었을지도 모른다. 또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카톨릭적인 종교 작가라고 부르는데 동의하지 않을 순 없지만, 그녀의 작품을 즐기는데 꼭 카톨릭적 정신을 가질 필요는 없다.
오코너의 세상은 마치 욥기 속의 세상과도 같다. 욥을 향한 신의 시련처럼, 세상은 불합리하고, 또 사람들에게 고난과 죽음을 준다. 그러나 욥기와는 달리, 오코너의 세상에선 신이 직접 욥과 대면하여 가르침을 주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욥과 같은 '선한 사람'이 없는 세상이다.
폐쇄적인 시골 환경에서 사람들은 일상을 살면서도, 거기엔 삶의 불합리함이 있고, 또 무의미한 불안이 숨쉰다. 길을 가다가 갑작스레 탈주한 살인마의 총에 위협을 받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 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라, 그저 우연한 불행에 불과하다. 그리고 도덕적으로 무감각하던 이들은 늘 그러한 도덕적인 시험을 받고, 또 시련을 겪는다. 때론 그러한 시련과 변용 자체가 종교적인 경험으로까지 오코너의 문장 속에서 승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의 이야기는 지루한 종교적인 설교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스릴러처럼 위기 속에서 저울질하고, 무엇보다도 그녀의 위선적인 사람들을 향한 조롱과 재치는 이러한 '끔찍한 이야기'에서 기묘한 웃음을 준다.
오코너의 세상에선 잘난 인간은 없다.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이는 그러한 꾀에 당하며, 우둔하고 맹신적인 이들은 또한 그러한 믿음에게 배신당한다.
그러나 단순히 그녀가 비관적이거나,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작가로 볼 순 없다. 모든 위대한 작가들이 그러하듯, 그녀의 이야기는 읽을 때마다 새롭고, 또한 사람들에게 고민의 여지를 남긴다.
오코너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자연스레 독자는 고뇌할 수밖에 없다. 가령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에서 모든 파멸을 자초한 어리석은 노파의 살인마를 향했던 손길은 일종의 참회인가, 아니면 어리석은 조롱 그 자체인가? 아니면 어리석은 이들을 비웃으면서도 그들을 향한 연민을 버리지 못하는 오코너의 손길인가?
오코너의 유명한 이야기의 제목처럼, 그녀의 세상에서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 그리고 좋은 사람으로 있기도 무척이나 힘들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손길을 멈춰선 안 된다.
* 그녀의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기에 남긴 단편의 수가 아주 많은 편은 아니지만, 하나하나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으므로, 굳이 가릴 필요는 없다.
** 한국어로도 그녀의 작품들 상당수가 소개되었기에 즐기는데 큰 문제는 없다.
*** 소장하고 있는 오코너의 작품집은 미국 도서관 LOA 판본으로 다시 읽으면서, 이번에야말로 감상문을 조금이나마 끄적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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