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 (1) <헤르메스적 정의> - 한 헤르메스주의자의 개인적 합일 프로젝트-H.D.


역시나 이번에도 너무나도 늦었지만, 이제서야 H.D.에 관하여 써본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원래 거물은 처음이나 마지막에 등장하지 않는가? 고로 난 늦은 게 아니라, 제때에 H.D. 에 관하여 써보는 거다.

H.D.는 물론 그녀의 필명으로 힐다 두리틀의 이니셜이다. 혹시라도 그녀의 책을 주문하려면, 힐다 두리틀로 검색하는 걸 추천한다. 불행하게도 그녀의 필명만으론 겹치는 이니셜들 덕분에 찾기가 힘들다. 

아무튼 H.D. 또한 영미 모더니즘의 거인 중 한 명이다. 끼리끼리 논다고, 그녀가 교류했던 모더니즘 인사들을 살펴보자 - 에즈라 파운드(H.D.의 필명 탄생과 연관이 깊으며 대학시절 연인이었다 친구로 쭉 지냈다), D.H. 로렌스, 매리언 무어, 예이츠, 브라이허 등등 목록은 장장하다.

그녀의 초기 시는 이미지즘 앤솔로지에 포함될 만큼 대표적인 이미지스트 시인이었지만, 소설 등도 많이 집필하였고, 많은 모더니즘 시인들이 그러하듯 후기엔 <삼부작>, <이집트의 헬레네> 같은 서사시를 쓰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양성애자였고 브라이허 같은 연인과도 사귀었으며 이러한 자신의 성향에 관한 고뇌 및 자전적인 이야기들 또한 소설로서 우리에게 많이 남겨주었다. 모더니스트들에 관한 회고록도 물론 있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할 것은 그녀의 마지막 시집인 <헤르메스적 정의 Hermetic Definition>이다.

<헤르메스적 정의>는 세 편의 장시로 구성되어있는데, 각각 <헤르메스적 정의>, <예지>, <겨울 사랑>이 그것이다. 제목에서 알다시피 헤르메스주의와도 연관이 깊다. H.D.의 경우, 역시 그녀의 동료들처럼 신화와 신비주의에 관심을 가지며 이러한 것들을 자신의 삶과 융합하여 자신의 시 세계로 삼는다. 그러한 경향이 훨씬 두드러지는 것이 그녀의 후기 시집들이며 <헤르메스적 정의>는 그러한 기나긴 세계의 종지부를 찍는 그런 작품이다.    

시기적으로 먼저 쓰인 <예지>의 경우, 공습에서 살아남은 독일 여자를 화자 삼아 그녀의 트라우마와 전쟁의 공포, 그리고 신비주의적 의식을 통한 안식에 관한 시다. 그러나 신비주의적 의식인만큼 외부보단 내면에 집중되며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날아가는 것으로 상징되는 안식에 집중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 장시는 신비를 목격하고 기록하는 성인의 기록담과도 같다. 이 작품과 직접적으로 연관 있는 것은 그녀의 기나긴 서사시 <삼부작>일 거다. 만약 이것에 대해 감상을 쓸 일이 있다면, 그때 조금 더 자세하게 연관시켜도 좋을 듯하다.

<겨울 사랑>은 그녀의 서사시 <이집트의 헬레네>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지만, 독립된 작품으로 봐도 무방하다. H.D.는 에우리피데스의 헬레네를 모티브로 삼아, <이집트의 헬레네>라는 서사시로 일리아스와 오이세이아의 신화를 재구성하였는데, <겨울 사랑>은 그런 재구성의 연장선에 놓여있는 작품이다. 허나 헬레네에 그녀의 서사시가 초점이 맞춰졌다면, <겨울 사랑>은 페넬로페에 초점을 맞춘다. 

<헤르메스적 정의>는 이 시집의 가장 마지막에 쓰인 작품으로 그 자체로서도 H.D.의 작별 인사와도 같은 작품이다. 

'왜 그대는 와서
내 쇠락을 방해하는가?
나는 늙었다 (그대가 올 때까지 난 늙었었다)' 
로 시작되는 이 장시는 이제는 늙어버린 자신을 돌아보면서도 과거에 자신이 보았던 장미와 연관지어선 장미-십자와 성모, 그리고 천사를 찾으려는 영적 여정을 그려낸다.

끝없이 '붉은 장미'와 파운드의 106번 칸토에서 구절을 따온 '장미가 꽃필 때까지 참으로 오래 걸린다'가 변주되듯 반복되는데, 이러한 H.D.의 후기 작품 상당수가 칸토스에 대한 화답, 혹은 자신만의 칸토스를 만드는 과정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파운드는 그녀가 시인이 될 것을 결심하는데 도움을 준 지인이었고, 이 작품은 기나긴 자신의 삶과 쓰였던 것들이 까메오처럼 등장하면서 성모와 기독교적 구원, 그리고 이시스 신화를 비롯한 헤르메스주의 관련 신화들을 결합하기 때문이다.

모더니즘 서사시와 신화와 결합된 작품에 익숙한 독자라면, 역시나 칸토스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데, 칸토스라는 거대한 프로젝트가 이러한 모더니즘 시들에 영향을 끼친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파운드와 H.D.의 관심사는 다르다. 파운드가 역사 그 자체와 반종교적인 자라면, H.D.는 앞서 말한 것처럼 기독교적 신비주의자에 조금 더 가깝다. 

이러한 장미를 찾는 여정, 천사와 대면하는 과정을 거쳐 마침내 이제는 노인이 된 정신은 끝을, 합일을 맞이한다.

<이제 그대는 태어났고
모든 것은 끝났다,
그대는 나를 홀로 내버려둘 것인가?

그대가 대천사들과 연인들에게 향할지,
혹은 지옥의 모험을 떠날지,
나는 알 수 없다,

나는 그저 알 뿐,
이 방이 날 담고 있고,
그것만이 내게 충분하다는 걸,

언제나 끝은 있는 법;
이제 난 내 수녀빛-회색을 걷어내며
충분히 알 수 있다,

가장 붉은 장미,
불변의 법칙을....
밤은 낮을 가져온다.>

그렇게 시인은 자신의 코다를 장식한다. 하지만 시인의 말처럼, 그대가 어디로 향할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알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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