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롤드 핀터 (1) 방 / 생일 파티/ 벙어리 웨이터 - 폭력의 미학 독서일기-희곡




읽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기분을 불쾌하고 더럽게 만드는 작가들은 여럿 있겠지만 영국 희곡계에선 대표적으로 세 사람, 해롤드 핀터, 에드워드 본드, 그리고 사라 케인을 개인적으로 꼽고 싶다. 물론 이 기분 나쁨은 더럽게 못 쓴 끔찍한 작품을 읽을 때의 감정이 아니다. 말 그대로 정교하게 짜인 무대 위에서 거대한 힘 아래 인물들이 망가지고 무너지는 것을 볼 수밖에 없는 무기력감에 가깝다.

이러한 대가들은 연극이라는 특성상 대화를 통하여 그러한 기분으로 관객을 이끈다. 다만 본드나 케인의 경우, 이러한 대화 후 충격적인 무대의 효과, 즉 잔혹성을 첨가하는 걸로 관객에게 충격을 준다면, 핀터의 경우엔 최대한 그 폭력이 절대된다는데 그 차이가 있다. (언젠가 쓴 사라 케인에 관한 감상을 참조하라)

이러한 차이는 사실 시대의 차이로 봐야할 것이다. 핀터는 이러한 부류의 선구자였고, 조금 더 구식 무대를 다루던 자였다. 자연스레 본드나 케인이 무대에 올렸을 때부터 스캔들이었단 희곡을 그대로 핀터의 시대에 옮길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본다면, 이미 핀터가 말과 대화로서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폭력의 장면을 완성했기에 다른 방법을 모색한 것이 아닌가란 생각도 든다.

해롤드 핀터는 사무엘 베케트나 이오네스코 등과 함께 '부조리극'이란 테마에 놓인 작가 중 하나지만, 각각의 작가들에게 특성이 있듯, 핀터 또한 다른 이들과는 차별된다.
베케트나 이오네스코가 비극적으로 보이는 희극이라면, 핀터의 경우 희극적으로 보이는 비극이거나 그저 비극 뿐이다. 이는 그가 다루는 무대에서부터 그 차이가 나타난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무대가 어딘가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곳이라면, 핀터는 대개 그 시대의 중산층 가정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는다. 적어도 관객의 시선에서 핀터의 무대는 평범해보이는 일상이고, 일상 속 얼굴들이다.

그러나 핀터의 무대가 시작되고, 그의 인물들이 대화를 시작하면, 우리는 무언가 불쾌감을 느낀다. 그의 주인공들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지만, 언제나 어긋나있다. 평범하게 세입자를 걱정하는 듯한 대화나 아침식사에서의 안부를 묻는 장면 속에서조차 핀터의 인물들은 언제나 '대화'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들 또한 의아해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들은 언제나 되묻고, 말을 멈추거나 헛소리를 내뱉고 점차 화를 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끝엔 언제나 어두운 폭력이 자리 잡는다.

단막극 <방>의 경우, 방에 사는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그녀의 집주인으로 보이는 이가 밖에서 방문하여 안부를 묻거나, 그녀의 남편으로 보이는 이가 왠지 모를 불길한 말을 내뱉으며 무대 밖으로 사라지고, 갑자기 그녀가 사는 방이 비어있다며 그녀가 아는 집주인이 아닌, 다른 집주인을 찾는 부부가 방문하는 등 방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 것도 모른 채 방에서 불길한 대화가 오고 간다.
핀터는 늘 이런 식으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그는 인물들 간의 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추측을 할 순 있지만, 그러한 건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그런 추측을 할 시간이 주어지기 전에 갑작스럽게 다른 인물이 난입하고 불안한 일상을 완전히 박살내니까.

대화란 것이 본질적으로 두 사람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것이라면, 주는 자와 받는 자의 위치가 생길 수밖에 없고, 핀터는 집요하게 이러한 대화의 본성을 권력구도로 확장시킨다. 강압적으로 명령을 내리는 자가 존재하고, 그 명령을 되풀이하고, 되물으며 따르는 자가 존재한다. 이렇게 비틀린 권력 관계로 이루어진 불안한 일상이 무대가 시작되고 대화가 진행되면서 본 모습이 드러나고 관계는 파탄난다.

그의 섬뜩한 작품 중 하나인 <생일 파티> 또한 마찬가지다. 이 극은 세입자와 친절한 노부부, 그리고 갑자기 찾아온 낯선 2인조로 구성되는 희곡인데, 일상 장면이 지나고 대화가 진행됨에 따라 관객은 막연히 이 세입자를 잡으러 오기 위해 조직과 같은 곳에서 2인조가 왔고, 결국엔 그의 '생일 파티'를 빙자하여 그가 납치되는 광경을 본다. 그러곤 2인조는 '친절한' 노부부에게 대화를 통하여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을 명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양 다시 노부부는 생일 파티가 끝난 현장을 치우게 된다.

좀 더 정교하게, 이러한 폭력과 권력 관계를 표현한 것은 그의 최고 걸작 중 하나라 할만한 <벙어리 웨이터>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이 단막극은 지령을 받아 명령을 수행해야하는 2인조 청부업자의 이야기이다. 제목인 '벙어리 웨이터'는 그들이 음식을 어딘가로 운반하기 위해 이용하는 덤웨이터-화물용 승강기-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벙어리처럼 말을 하지 못한 채 묵묵히 말에 따라야하는 이를 의미하기도 한다.
불쾌할 정도로 계속되는 무의미한 명령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음식들의 행방에 자연스럽게 권력 구도에 반항하고 의문을 품는 자와 묵묵히 따르는 자의 대립이 형성되고, 이 단막극은 불쾌하고, 파멸적인 형태로 그 막을 내린다.

앞서 말한 것처럼 대개 핀터의 무대는 현실적으로 보이는 배경에서 낯선 무언가나 알 수 없는 권력이 위태로웠던 관계를 완전히 박살내는 것이 그 주다. 그의 대화는 일상적이며 때론 우스꽝스런 꽁트처럼 느껴지지만, 그런 대화 내내 관객을 불안하게 만들고, 끝내 대화로서 폭력을 표출하는 것은 핀터의 묘미일 거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냉정하고 또 냉혹하다. 자신의 인물들에게 애정을 보이기 보단 그의 지문 속 대화처럼 어깃장을 놓으며 폭력으로 이끄는 것이 핀터의 미학일 거다.

사실 해롤드 핀터의 대표작은 대개 초기작들에 머물려있고, 중기 이후론 대체적으로 범작들이지만, 그래도 그가 무대 위로 소개한 이러한 폭력성과 대화의 악몽은 기억할 만하다. 그는 억압하는 권력에도 큰 관심을 가지는데 이러한 면은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 조금 더 불쾌하고 끔찍한 형태로 확장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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