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먼 멜빌 (1) <클라렐> - 불신자의 순례 프로젝트 - 허먼 멜빌



<모비딕>의 실패 이후 패배한 에이허브처럼 허먼 멜빌 본인 또한 기나긴 몰락의 길을 걸어야했다. 물론 그는 포기하지 않고 야심찬 작품들을 계속 내놓았다. 그리고 계속 실패했다. 뒤늦게 재평가가 이루어졌지만, 사실 멜빌 본인으로선 알 수 없을 거다. 그는 그러한 사후에 회의를 품었으니까.
<모비딕>에서 이미 그 징조를 보였지만, 멜빌은 믿음을 가지고 싶어하는 불신자에 가깝다. 기독교적 세계에서 자랐지만, 그는 회의적이었고, 그렇다고 완전히 그 믿음을 편히 버릴 수도 없는 자였다. 그는 고뇌하는 자였으며 이러한 신앙의 회복을 꿈꾸기도 했다. 그리하여 그는 실제로 이스라엘 지방으로 성지순례를 떠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여행으로 탄생한 작품이 바로 <클라렐 - 성지 속 여정과 시>다.

이 거대하고 난감한 작품은 서사시이며 만 8천행의 분량을 자랑하는데 이는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보다도 방대한 분량이다. 멜빌의 말년을 장식하는 이 거대한 녀석이 얼마나 난감한지 그 분량과 형식만으로도 와닿을 수 있을 거다. 더군다나 시적 형식 또한 멜빌은 전통적인 무운시를 버리고 4보격을 택하는데, 이러한 그의 실험성(?)을 모더니즘의 시초격으로 재평가하는 움직임마저 있다하니 참으로 기이한 일일 거다.

이 서사시는 아마도 멜빌 본인의 모습이 상당수 들어가있으며 이쉬마엘과 같은 멜빌의 추방자 주인공인 신학생 클라렐이 멜빌처럼 종교적 믿음이 흔들리는 걸 회복하고자 예루살렘에 온 직후의 순례에 관한 이야기이다.
예루살렘은 본질적으로 여러 종교, 유대교나 이슬람교, 기독교 등의 믿음들과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곳으로서 이미 이 자체만으로도 클라렐은 흔들린다. 그곳에서 그는 영웅 서사시 속 주인공처럼 사랑을 찾지만, 여정을 위해 헤어지고, 마치 순례의 끝에서 성취물로서 다시 사랑을 얻을 것처럼 묘사됨과 동시에 불길한 복선이 깔리며 순례는 시작된다.

마치 피쿼드 호의 출항처럼 시작되는 이 순례는 다양한 사람들과 동행하며 다양한 믿음을 가진 이들이 서로 다투기도 하고, 이야기를 전하기도 하며 이곳저곳을 다니는 걸로 진행된다. 순례길에 오른 <켄터베리 이야기>를 암시하며 패러디되듯, 여러 논쟁과 이야기들이 범람하는 가운데 클라렐은 이쉬마엘이 그러하듯 듣는 자에 가깝다.
이러한 멜빌의 인물들이 들려주는 논쟁과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도 기괴하고, 이 서사시의 기묘함을 돋보이게 한다. 대개의 논쟁은 주로 이 시대의 중점적인 과학과 종교의 대립에 관한 것이면서도 멜빌의 이야기들 상당수는 그가 썼던 이야기들의 패러디에 가깝다. 마치 이 서사시가 단순히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멜빌 본인의 작가로서의 삶을 회복하려는 순례라는 듯.

그러나 멜빌은 본질적으로 패배하는 자다. 순례 여행에서 이미 실패했듯 그 또한 이 서사시를 노래하면서도 끝끝내 명확한 해답을 내릴 수 없었다. 따라서 여기엔 나자로의 부활이 없고, 얼핏 이쉬마엘의 표류처럼 클라렐 또한 표류할 수밖에 없게 된다. 멜빌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하여, 혹은 당시 독자들의 시선을 위로하기 위하여 클라레를 위한 마지막 노래를 바치지만, 클라렐과 멜빌의 패배 자체를 없는 일로 만들 순 없을 거다.

여러모로 기묘한 작품이며 현재 멜빌 작품군에서 가장 늦게 재평가 받은 축에 속하는 작품인만큼, 미래엔 이 작품 또한 분명 더 큰 조명을 받을 가능성은 농후하다. 멜빌이 단순히 선구자적인 소설가일 뿐만 아니라, 뛰어난 시인이기도 했었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하여. (그리고 사실 어느 정도는 이미 증명되었을 것이다. 이 작품이 <황무지>를 예견한 작품처럼 취급받기도 하니까)
이 작품을 멜빌에 대한 첫번째 감상으로 쓰기엔 조금 아이러니한 점이 있다. 그렇지만 나 또한 멜빌처럼 첫 이야기부터 쓰는데엔 실패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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