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골, <친구와의 서신 교환선> - 고골이 갇힌 연옥 독서일기-산문








니콜라이 고골은 그의 기괴한 작품들이 예지가 아니었을지 의심될 정도로 기괴한 최후로 그 삶 또한 전설적이게 되었다. 러시아 정교로 '회귀'한 말년의 그는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죽은 혼> 2부를 잿더미로 만들었으며 끝내는 거머리 치료와 단식을 반복하다 죽었는데 이러한 최후는 그의 등장인물들조차 맞이하지 못했다.
<친구와의 서신교환선>은 그러한 말년의 고골이 만든 설교모음집으로 이미 당대에서부터 변절자 등의 온갖 비난을 야기한 문제작이었고, 오늘날조차 사실상 고골 연구자들을 제외하면 읽는 이가 거의 없는 그런 괴작이다. 

이 종교 설교집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봐야할 것이다. 
한 작가가 당혹스런 괴작을 쓰는 것은 문학의 역사에서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우리의 켈트 대마법사 예이츠는 나선과 지랄두스와 마이클 로바티즈를 설명하기 위하여 장대한 자동기술록인 <환상록>을 썼고, 말년의 포는 갑자기 우주론을 파혜치기 위하여 <유레카>를 썼다. 파운드가 토마스 제퍼슨과 무솔리니를 비교하며 무솔리니를 찬양하는 <제퍼슨/무솔리니> 같은 에쎄이조차 있으니 고골 같이 기괴한 작가가 난데없이 이런 광신적인 설교집을 쓴다고 하여 그렇게까지 기이한 일은 아닐 것이다.

또 한 편으론 고골이 '러시아 문학'이 낳은 작가임을 생각하면, 정교로의 회귀는 러시아 작가로서 당연한 숙명일지도 모른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슬라브주의는 너무나도 유명한 사례고, 고골과 비견될 만한 또다른 사례는 이단아였지만 역시 문학을 저주로 취급하고 종교로 돌아간 톨스토이가 있을 것이다. 고골의 말년의 회귀는 러시아 작가로선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물론 이러한 근거들을 이유로 <친구와의 서신교환선>이 덤덤하게 읽히는 작품이냐고 묻는다면, 당혹감은 아무리 이유가 충분해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그 답일 것이다. 읽다보면 이 책과 이 책을 쓸 당시의 고골은 정치적이든 어떠한 계파적이든 한쪽으로 구별되기 어렵다. 그의 노골적인 차르 찬양이나 농노제 미화 등은 충분히 당혹스럽지만, 읽다보면 이 모든 것은 결국 러시아 정교로 회귀하지, 현실의 군림하는 차르들에 대한 찬양하고는 조금 거리가 있다. 러시아 정교를 차르 체제와 분리시키기 어렵다는 걸 생각하면, 정교적으로 이상적인 차르를 찬양하는 것은 고골에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러한 찬양 속에서 푸쉬킨마저 차르애호가로 해석하는 그의 광신은 여전히 당혹스럽긴 하다. 
여기에서의 설교자 고골은 당시에 그가 들었던 변절자라는 악평보단 광신도란 평가가 더 적절하다. 자신의 소설처럼 광신도가 된 고골은 여전히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다. 그가 모든 러시아적 문제를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결국엔 정교의 구원과 믿음으로 대동단결할 것을 외치는 설교를 보고 있자면, 왜 그가 이 책으로 양쪽 진영 모두에게 비난을 받고 검열을 받았는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파운드의 무솔리니 찬양집이나 엘리엇의 반유대주의 문화예찬, 혹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범슬라브성애 칼럼들을 생각해보면 여전히 이 책 자체는 당혹스럽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포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을지 모른다. 물론 여기엔 이 책을 쓴 작가를 자연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읽다가 당혹감을 주는 책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 작가 미친 거 아니냐? 며 흥분하게 만드는 경우, 그리고 작가가 진짜로 미쳤구나 라며 연민을 느끼게 만드는 경우. <친구와의 서신교환선>의 경우 명백히 후자다.

이 책을 자신이 정말로 고골을 좋아한다면, 굳이 그의 모든 것, 그리고 정신세계를 알고 싶다면 읽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연구 차원에선 분명 이 책 또한 그 가치가 있다. 이 여러 편의 편지를 빙자한 설교로 이루어진 모음집엔 간혹 고골의 종교관이나 세계관, 그리고 예술관을 드문드문 드러내는 산문들도 있으며 가뭄의 단비처럼 이 괴로운 책을 읽는 이에게 아주 잠깐이나마 휴식을 제공한다. 특히나 <죽은 혼>에 관한 작가 본인의 구상과 그에 대한 생각은 그 자체만 독립적으로 <죽은 혼> 편집에 같이 넣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연구자나 전집성애자에게 해당될 말일 것이다. 역자가 서문에 그래도 어떻게든 읽을 수 있는 범위 내로 조금 문장을 조절했다는 말을 쓴 것을 감안해도 <친구와의 서신교환선>은 난잡하며, 앞서 언급했든 정말로 고골이 아프고, 돌아버렸구나 란 연민이 앞서게 만드는 그러한 글이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선 이러한 고골의 변화가 크게 놀랍진 않다. 톨스토이가 갑작스럽게 종교로 빠진 것이 아닌 것처럼, 사실 고골 본인 또한 전형적인 러시아 문학 작가처럼 늘 정교와는 함께하곤 하였으니까. 애당초 <죽은 혼>은 고골 자신만의 신곡으로 계획되었으며 고골이 '미쳐버린' 것엔 스스로가 연옥과 천국을 쓸 수 없다는 좌절감이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런 러시아적 작가가 정교적이지 않다면, 누가 정교적이겠는가?

고골의 비극이 있다면, 그는 추한 자들의 지옥을 그리는데 재능이 있었지만, 결코 선한 자들을 그릴 순 없었다는데 있다. 그 자신 또한 이를 너무나도 잘 알았고, 절망했으며 끝내 <죽은 혼> 2부를 불태웠다.
개인적으론 그가 그 원고를 소각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딱히 없다. 내가 고골에게서 원하는 것은 죽은 혼들을 사고파는 추한 치치코프지, 회개하여 천국으로 승천하는 치치코프가 아니니까. 하지만 그가 그리고자 했던 죽은 혼의 연옥과 천국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그 짐작은 할 수 있다. 소설로서 연옥을 만들 수 없었던 말년의 광신도는 소설 대신 설교를 택했다. 적어도 그가 완성했을 <죽은 혼>의 2부와 3부는 <친구와의 서신교환선>과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설교자로서도 고골은 구원을 얻는데 당연스럽게도 실패했다. 기억될 만한 가치가 있을 실패일지도 모르나, 실패는 실패다. 덕분에 죽은 혼은 연옥에서 기약없이 머물고 있다.

*어쩌다가 그의 걸작들을 내버려두곤 이 괴작이 첫 감상이 되었다. 이 또한 고골스런 결말이겠다.
  



덧글

  • Scarlett 2019/02/09 11:29 # 답글

    '작가가 진짜로 미쳤구나 라며 연민을 느끼게 만드는 경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리뷰를 보니 이 책이 궁금해지네요.
  • JHALOFF 2019/02/09 21:07 #

    전집주의를 실천하고 싶다면 좋은 선택이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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