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몽 루셀, <아프리카의 인상> - 상상의 정원 독서일기-소설

레이몽 루셀의 대표작 <아프리카의 인상>이 문학동네에서 최근 잘 빠진 판형으로 나왔다.

<로쿠스 솔루스> 감상에서도 짧게나마 적었지만, 레이몽 루셀이란 존재는 컬트적인 존재다. 그와 연관되는 키워드만 보더라도 이 작가는 사실 대중적인 작가가 절대 될 수 없다. 루셀은 어떤 인간인가? - 초현실주의자들이 우상으로 삼는 사람. 자비출판만 하던 자. 프루스트의 이웃이자 친구였으며 역시나 같은 부르주아지 생활을 즐기던 딜레당트. 이런 키워드들을 모두 가지는 존재가 쓴 글이 결코 '팔릴 만한 글'은 절대 아닐 것이다.

<아프리카의 인상> 또한 실로 그러하다. 그의 대표작이긴 하지만, 이는 이 책을 접하는 독자에게 특별히 와닿는 말은 아닐 것이다. 물론 읽다보면 재밌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고, 읽기의 즐거움 또한 분명 존재하지만, <아프리카의 인상>과 루셀의 글쓰기의 즐거움은 일반적인 이야기의 즐거움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

<아프리카의 인상>이 그렇다고 이야기가 없는, 말 그대로 이야기에 반역하는 이야기인 것은 아니다. 분명 요약할 수 있는 줄거리도 존재한다. 일련의 유럽인들이 배를 타고 가다 표류하여 우연히 도착한 한 아프리카 왕국. 그곳에서 포로로 잡힌 채 몸값 협상을 기다리는 동안 그들은 왕을 위하여 기괴한 공연도 벌이고 왕국의 여러 일들과 사건을 목격한다, 정도가 이 소설의 줄거리다. 하지만 이러한 시간적인 구성은 사실 <아프리카의 인상>을 읽는데 오히려 방해요소로 작용한다.
루셀은 <아프리카의 인상>을 어떠한 인과적 설명 없이, 단순히 왕을 위한 공연 장면들로 소설의 전반부를 채워넣는다. 그곳에서 독자는 이런저런 초현실주의 미술관에서 느낄 법한 기괴한 인상들을 볼 뿐,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대체 그들이 있는 이곳이 정확히 어떤 곳이며 왜 있는지, 이 공연의 목적은 무엇인지 등등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어지는 중후반부에선 이러한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들이 공개되며 퍼즐이 풀리는 것처럼 모든 것들이 정교하게 해명되는 것은 사실이나, 이 소설의 제목은 아프리카의 '인상'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쏟아지면서도 사실 이 책을 즐기는 방법은 루셀이라는 한 광인이 집요하게 서술하는 기괴한 장면들에 대한 인상들을 향유하는 것일 거다. 이러한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방법과 루셀이 말 그대로 '상상'으로 만드는 그로테스크는 왜 초현실주의자들이 열광하는 컬트적인 존재가 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지만, 일반적인 독자로 하여금 오히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의 혼란만을 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감정의 혼란은 그 자체로서 즐거움을 주기도 하며 익숙한 독자들은 오히려 원할지도 모르겠다. 때론 루셀의 이 왕국은 현실이 아닌 텍스트로 이루어진 레퍼런스들 위에 세워진 탑과도 같다. 거기에서 우리는 때론 쥘 베른의 모험이나 이런저런 과거의 탐험 소설들과 서사시들, 혹은 아라비안 나이트와 같은 신비한 장소들을 자연스럽게 연상하게 된다.

물론 여전히 전통적인 이야기에 익숙한 독자들에겐 불운이지만,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련의 장면들에 대한 이유나 원인들은 모두 언어의 장난이자 우연, 혹은 루셀의 상상으로 치부하는 것이 나으며 마음도 편할 것이고 실제로도 옳다. 루셀 본인이 서숤하는 아프리카의 한 상상 속 왕국은 루셀이 살던 당시의 아프리카는 당연히 아니다. 그렇다고 그가 이러한 지리에 무지했다고 치부할 수는 없다. 부르주아지였던 그는 세계여행을 즐겼으며 교육도 어느 정도 받았을 것이다. 루셀은 차라리 의도적으로 현실을 무시하고, 자신의 상상 속에서 기괴한 왕국을 쌓아올리는 쪽이었다. (이 점이 초현실주의자들을 더욱 열광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문학동네에서 소개된 <아프리카의 인상>은 루셀 본인이 사후에 발표했던 자신의 집필 방법에 관한 산문 또한 수록했다는 점이다. 철자 하나로 달라지는 단어들과 거기에서 연상되는 것들에 관한 글쓰기. 말 그대로 언어의 변화와 장난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자신의 상상을 통하여 이 상상 속 정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실마리를 조금이나마 우리에게 던져주기 때문이다.

물론 앞서 말했듯 이 책을 즐길 수 있는 독자들이 온전하게 즐기는 것은 말 그대로 그 인상들을 향유하는 것이다. 기괴한 상상들. 그리고 한 광인이 이성적인 척 들려주는 이야기들. 그 기괴한 정원에 온 것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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