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먼 멜빌 (3) <이스라엘 포터> - 부조리한 방황 프로젝트 - 허먼 멜빌


허먼 멜빌의 세계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자면, 어느 정도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모험담을 쓰던 시기, <모비딕>으로 시작하여 그의 몰락을 상징하는 소설들을 쓰던 시기, 그리고 30여 년간 시에만 집중하다 다시 소설로 돌아와 <빌리 버드>의 이야기로 막을 내린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이스라엘 포터 - 그의 50 여년의 유배>는 이러한 멜빌의 두번째 시기에 쓰인 소설이며 그의 다른 소설들이 그러하듯 이 소설만의 특징을 간직하고는 있다.
우선 이 책이 쓰인 배경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피에르>의 또다른 실패 이후, <바틀비>를 쓰면서도 돈에 궁한 멜빌이 어느 정도 '상업적' 목적을 바탕으로 돈을 벌기 위하여 잡지 연재를 하게 되는데, 그 연재본이 바로 <이스라엘 포터>다. 이러한 배경을 감안하고 읽어도, <이스라엘 포터>의 내용은 상대적으로 멜빌의 작품군에서 읽기 쉬운 편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실제 이스라엘 포터라는 미국 독립전쟁 시기의 한 군인을 다룬 팜플랫을 바탕으로 쓰여진 실화소설이자 멜빌의 유일한 역사 소설인데,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멜빌은 상업적인 목적을 달성하였는가?

답은 당연히 '아니오'다. 이미 <모비딕>에게 패배한 멜빌은 더 이상 상업적인 글을 쓸 수 없는 몸이었다. 오히려 아무런 정보 없이 이 책을 읽고 난 후, 상업적 목적으로 썼다는 걸 알게 된다면, 멜빌을 양심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실제 이스라엘 포터에 관한 팜플랫 또한 그가 독립전쟁에 참가했지만 영국으로 포로로 끌려가 수십년간 걸인 생활을 하게 되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룬다고 한다. 이러한 몰락한 자에 관한 소재는 참으로 멜빌에게 군침도는 소재였으며 멜빌은 이를 이용하여 소설로 만든다. 물론 어느 정도 각색과 실제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멜빌의 상상으로 뒤섞으면서. 멜빌의 다시-쓰기는 실로 기묘하게 현실을 뒤틀어버린다.

이 소설은 겉보기엔 평범하고 무미건조한 인간이 기묘한 불행으로 끝없이 고난에 처하는 과정을 그리는 반-영웅소설처럼 보인다. 그러한 과정에서 약간의 웃음을 주기도 하며 사실은 꽤나 상업적으로 먹힐 만한 글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마저도 한순간 든다.
이스라엘 포터는 멜빌의 세계에서 꽤나 특이한 주인공이다. 앞서 말했듯 그는 평범한 인간이며 오히려 둔하고 딱히 선하거나 악한 자도 아니다. 말 그대로 그는 그저 독립전쟁에 우연히 참여하게 된 병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멜빌의 세계를 생각하자면, 그는 참으로 독특한 주인공이 된다. 멜빌의 인물들은 대개 사색적이고 방황에 찬 지식인이거나 어떠한 보이지 않는 힘과 맞서며 패배하는 프로메테우스적 존재들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포터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스라엘 포터는 바틀비와 에이허브들로 가득한 세상에 홀로 던져진 평범한 존재에 가깝다. 얼핏 평범한 반영웅담의 주인공처럼 보이던 그는 끝없는 불운과 오해로 소동에 휩싸이고 자신도 모르게 몰락하며 수많은 기괴한 인간군상과 함께한다.
미국독립전쟁이 중요한 배경을 일단 차지하고 있는 만큼, 벤저민 프랭클린과 같은 실제 미국의 역사적 인물들도 등장한다. 그러나 멜빌이 그리는 그러한 미국적 영웅들은 실로 기이하다. 대표적으로 프랭클린의 경우, 그는 자계서 작가들이 추앙하는 신적 존재 프랭클린으로서 묘사된다. 늘 자신의 자기계발 조언들을 부조리하게 늘어놓는 풍경은 실로 바틀비적이다. 불운한 이스라엘 포터를 둘러싼 불운한 세계의 존재들은 대개 이런 식이다.
하지만 불행과 우연이 계속될 수록, 우리의 평범한 이스라엘 포터 또한 조금씩 멜빌의 등장인물로 변하는 듯하다. 그리고 멜빌적 영웅들이 그러하듯 그 또한 방황하고 패배하며 그걸로 끝나고 만다.

분량 상 이 소설은 경장편에 가까운데, 소설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미국독립전쟁 시기에 할애한다. 부조리하게도 그의 50년의 방황 중 45년에 가까운 분량은 소설 마지막 몇 챕터들에 몰입되는데, 멜빌이 그려내는 이스라엘 포터의 추방과 방황은 부조리 소설을 연상케 할만큼 기괴하다. 거기에 미국 독립전쟁에 참여한 '영웅'이 거지로 방황하다 미국으로 돌아와 바로 죽는 그런 장면을 보고 있자면, 왜 이 상업적인 이야기가 상업적으로 실패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이 소설이 독립전쟁의 병사를 가지고 반영웅담을 쓰고 있으니, 언제나 '아메리카'에 몰두하던 멜빌이 그려내는 아메리카에 대한 비판인가? 피쿼드호로 자신의 아메리카를 그려낸 멜빌이 이스라엘 포터의 불행과 죽음, 그리고 자신이 그려내는 기괴한 미국의 영웅들을 비판하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을 멜빌적 독자는 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기엔 이 소설은 차라리 카프카의 카를 로스만의 선배에 더 가깝지 않을까란 생각이 감돈다. 부조리하게도 이 소설을 어떻게 해석하는 것부터가 무의미해보인다.

자연스레 이 소설은 꽤나 어중간하게 보인다. 당시에 상업적으로 먹힐만한 글을 어떻게든 흉내내려는 낌새는 읽는 것은 편하지만 조금은 단조롭게 만든다. 멜빌의 몇몇 유머는 조금 흥미를 주면서도 역시 그는 비극에 어울리는 작가란 생각을 들게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치 카프카의 <아메리카>를 연상케하는 이 부조리한 웃-픈 추방담을 읽고 있자면, 멜빌은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멜빌을 벗어날 수 없구나, 그런 연민마저 들게 만든다. 멜빌에 익숙한 독자라면, 대부분의 페이지는 조금 단조로울 수도 있겠지만, 마지막 몇 챕터에선 원하는 걸 얻게 될 것이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통계 위젯 (화이트)

3469
440
601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