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창백한 불꽃> - 그림자 해석하기 프로젝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나보코프의 <창백한 불꽃 - 페일 파이어> 는 그 형식 자체로서도 독특한 '소설'이다. 사실 이를 '소설'로 칭하는 것엔 조금 미묘한 감이 있다.
<창백한 불꽃>은 <창백한 불꽃>이란 제목의 999행까지 쓰여진 존 쉐이드의 장시와 거기에 주석을 다는 찰스 킨보트의 산문으로 구성되어있으니까.

물론 나보코프는 뛰어난 산문가로 이미 인정받았고, 자연스레 <창백한 불꽃>은 나보코프의 걸작 산문이자 소설로 이미 널리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시인으로서의 나보코프, 그리고 존 쉐이드의 시 <창백한 불꽃>에 대한 평가는 조금 엇갈리는 감이 없잖아 있다. 저명한 나보코프 연구자이자 <창백한 불꽃> 특별판의 평론을 담당한 브라이언 보이드처럼 단순히 산문으로서가 아니라, 독립된 시로서 <창백한 불꽃>의 가치를 옹호하는 이도 있으며, 결국엔 '주석' 없이 성립될 수 없는 미묘한 시로 비판하는 이도 적지 않아 있다.

물론 존 쉐이드의 이 기묘한 장시는 얼핏 보기엔 전통적이고 때론 단조로운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러면서도 T.S. 엘리엇의 시들을 패러디하고 교묘하게 조롱하는 면 등은 현대적이게 보이게도 한다. 

<태양은 도둑이야, 그의 거대한 장관으로
광대한 바다를 강탈하지. 달도 순전히 도둑에 불과해,
그녀의 창백한 불꽃은 태양으로부터 낚아챘지.>
- 윌리엄 셰익스피어, <아테네의 티몬>

나보코프와 존 쉐이드가 제목을 인용한 인간혐오자 티몬의 대사는 말 그대로 이 시의 성격을 나타내는 듯싶다. <창백한 불꽃>은 결국 삶의 그림자를 탐구하며 자신에게 있지 않은 것을 교묘하게 훔치려는 한 삶의 회고록이다.

<나는 유리창 속 가짜 하늘에게
살해당한 황여새의 그림자였다.
나는 잿빛 깃털 자국이었다 -그렇게 나는
거울 하늘 속에서 살았고, 날아다녔다.
하지만 안에서조차, 나는 나 자신과
내 등불, 접시 위 사과 한 알을 만들어야했다.>

존 쉐이드는 시의 시작을 다채롭고 교묘한 비유들로 독자의 시선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러한 화려한 비유로 우리는 쉐이드가 말 그대로 '그림자', 그것도 죽은 이의 그림자에 불과하며 모든 것을 '만들어야했음'을 알 수 있다.

<내 신은 어릴 적에 죽었다. 숭배하는 것은 내게
수치스러웠고, 그 가정들은 불완전했다.
자유로운 인간은 신을 필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자유로웠던가?>

형식을 제외한 주제나 그 표현만으로도 사실 <창백한 불꽃>은 괜찮은 시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이 시의 핵심적인 주제 중 하나는 결국 살아가는 그림자의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성찰이다. 물론 여기엔 전적으로 쉐이드의 가정사가 깊게 관여되며 자연스럽게 죽은 황여새의 그림자는 자신의 삶을 토로하는 고백록을 작성한다.

<나는 유리창 속 꾸며낸 고립에 
살해당한 황여새의 그림자였다.
나에겐 두뇌가 있었고, 오감이 있었다,(하나는 특별했지)
그렇지 않다면 나는 그저 영향력 있는 괴짜였다. 
잠자는 꿈 속에서 나는 다른 녀석들과 놀았지만
진실로 무엇도 질투하지 않았다 . >


<삼단논법 하나: 다른 이들은 죽는다. 하지만 나는
다른 이가 아니다. 고로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공간은 눈 속 벌떼이며 시간은
귓속 지저귐이다. 이 벌집 속에 나는
갇혀있다.                            >

그러나 창백한 불꽃을 써내려가는 존 쉐이드는 아직은 죽지 않았기에 결국엔 내내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기묘한 사실은 그가 시의 마지막 부분에 와선 시를 쓰고 있는 자신과 마주하고, '999행'을 써내려갔을 때 자유롭지 못한 죽음을 맞이한 점에서 작품 외적으로 더욱 아이러니하게 만든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더 많은 부분도 고려의 대상이지만) 보이드가 주장하는 것처럼 <창백한 불꽃>은 그 자체로서도 충분히 즐길만한 시인 나보코프와 존 쉐이드의 시일 것이다.

물론 4 개의 칸토로 구성된 이 장시는 쉐이드의 예술관이나 그의 삶에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그러나 굳이 그런 부분을 인용하고 싶진 않다.
왜냐하면 그림자와 그 물체처럼, <창백한 불꽃> 또한 그 주석을 통하여 아이러니하게도 '완성'되는 텍스트니까. 그 자체로서도 나쁘지 않지만, 역시나 '독자'로서 우리는 킨보트의 감상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드디어 공교롭게도, 오랜 기다림 끝에 <창백한 불꽃>이 다시 한 번, 제대로 번역되엇다.

이제는 불꽃과 그 그림자와 마주할 시간이다.


(2-2)에서 언젠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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