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바이스, <소송 / 새로운 소송> - 한 마리 개처럼 독서일기-희곡




가끔 한국에 이렇게까지 다양하게 번역되고 소개된 것이 놀라운 작가들이 몇 있는데, 페터 바이스도 그 중 하나인 거 같다. 이는 전적으로 작가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한국 번역 및 출판 풍토를 일반적인 독자 입장에서 생각해볼 때 매우 기이한 사례로서다.
그의 소설 역작 <저항의 미학>에서부터 희곡 <소송>과 <새로운 소송>까지 생각 외로 한국은 바이스를 좋아하는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두 차례 소개되었지만 모두 절판된 그의 최고 존엄 <마라/사드>가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소개되기를 기원한다.

한국 번역본은 <소송>과 <새로운 소송> 두 편을 동시에 수록하는데,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카프카의 <소송>에 기반을 두고 있는 희곡군이다.
<소송>은 전적으로 카프카의 <소송>의 희곡화다. 원작에 충실하고, 모든 희곡화가 그러하듯 바이스 본인의 해석으로 바라보는 요제프 카의 처형극이지만, 카프카의 원본을 모른다면, 이 희곡만으로도 <소송>을 즐기기는 괜찮을 것이다.
다만 전적인 한계는 명확하다. 굳이 카프카의 것을 놔두고, 이 희곡을 읽을 필요가 있는가? 이 본질적인 의문으로 바라보면 이 희곡은 실패작이다. 물론 모든 재창작이 실패작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바이스의 <소송>은 굳이 <소송>의 사례에 더할 매력까진 없다.

바이스 본인도 이 한계를 명확히 알고 있었고, 그의 <새로운 소송>은 제목처럼 그가 새롭게 쓴 소송이다. 자신의 말년에 거의최후의 작품처럼 쓰여진 이 희곡은 바이스의 생존 당시의 현대로 무대를 옮기고, 줄거리도 카프카의 <소송>과는 몇 가지 틀을 제외하면 다르며 그 배후엔 거대한 기업들의 그림자가 자리잡고 있다. 물론 '새로운'이란 제목만큼 새로우면서도 과거의 카프카의 뿌리를 완전히 단절할 순 없다. 하지만 생각해본다면, 요제프 카의 삶을 어떤 식으로 보이고 해석하든 그는 요제프 카일 것이므로 바이스의 방식이 틀렸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소송>보다는 나을지 모르지만, 사실 <새로운 소송>도 썩 만족스럽진 못하다. 이 무대 뒤에 자리잡고 있는 카프카의 아우라가 너무나도 큰 까닭일까?
바이스를 여러 방식으로 즐기고 싶다면 좋겠지만, 그의 대표작을 읽고 싶다면 역시나 추천하고 싶진 않다.

바이스를 진정으로 즐기려면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마라/사드>의 재출간 밖에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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