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보이드, <창백한 불꽃 – 예술적 발견의 마법> - 정리 독서일기-비평


- 나보코프의 <창백한 불꽃>에 대한 스포일러 있음.

- <창백한 불꽃> 해석 관련해서 참고해볼 만한 면도 있으므로 간략하게 정리해봤는데, 

실제 해석서에서 인용하고 설명하는 부분은 거의 생략함.

- 문학동네 <창백한 불꽃> 해설 부분에서 실제 보이드의 해석이 일부 소개되는데 조금 더 자세히.



<창백한 불꽃 – 예술적 발견의 마법>, 브라이언 보이드

-브라이언 보이드는 나보코프 전기를 썼고, 또 나보코프 작품 편집자이자 대표적인 연구자로 유명한데, 그 외엔 비평과 이야기에 진화론적 해석을 도입하려고 시도하는 등 과학적 방법론을 도입하려는 문학 연구가이기도 함.

- 이 <창백한 불꽃> 해석서도 그러한 시도로도 볼 수 있는데, 특히 보이드가 주목한 건 포퍼의 반증 이론으로, <창백한 불꽃>의 그럴싸한 해석을 반증가능성이 있는 과학 이론 비슷하게 해석함. 즉, 진실이 있기야 하겠지만, 사실 100프로 확신할 순 없는 무언가. 물론 보이드가 이걸 직접적으로 적용하는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비유에 가까움. 결말에 왜 특정 해석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패러다임으로 간략하게 설명하기도 하지만, 주된 내용은 아님.

- 이 해설서는 헤겔의 변증법식 정-반-합 구조를 차용하고, 또 나보코프 본인이 끝없이 여러 번 읽는 것을 강조한 걸 이용하여 ‘정 – 읽기’, ‘반- 다시 읽기,’ ‘합 – 다시 다시 읽기’로 해석이 나아감. (나보코프 본인이 3에 강박적으로 집착했고, 변증법적 구조를 이용하기도 함)

- 정에 해당하는 첫 번째 파트는 말 그대로 <창백한 불꽃>을 처음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해석하기로, <창백한 불꽃>을 읽었다면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수수께끼의 답을 그대로 제시함. 킨보트 = 젬블라의 왕이나 그라두스 = 현실에서 판사를 죽이려던 미치광이라 사실 젬블라 이야기가 전부 구라 아닌가, 라며 독자를 의심 속으로 밀어 넣기 라든가.

- 반에 해당하는 두 번째 파트는 이제 소설의 내용을 알고, 다시 읽어보면서 새롭게 보이는 것들에 대한 해석으로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봄. 지나가던 식으로 언급되어 넘어갔지만, 다시 보니까 중요해 보이는 이들처럼. 대표적으로 보트킨 교수.

- 킨보트 = 보트킨 교수 해석은 <창백한 불꽃> 관련 해석 중에 처음부터 나와서 메이저하고, 나보코프 본인도 의도한 게 거의 분명해보여서 일반적인 독자도 약간의 수고만 하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해석인데, 보이드 본인도 이 해석에 동의하면서 조금 더 논의를 진행시킴.

킨보트 = 보트킨 해석에서 가장 직관적인 근거는 킨보트(Kinbote)가 보트킨(Botkin)의 변형이란 것이고, 소설과 관련된 가장 직접적인 근거는 ‘색인’의 ‘보트킨’ 항목. 

쉐이드와 킨보트를 제외하면, 보트킨만이 유일하게 색인에서 쉐이드의 대학 관련 인물 중 이름이 있으면서도, 정작 소설엔 이름만 지나가다 언급되고, 직접 등장은 안 함. 
그런데 보트킨 항목에 달린 관련 주석들 중에서 시빌 쉐이드가 킨보트를 경멸할 때 부르는 명칭이 그대로 있고, 또 그 일화가 언급되는 주석 번호가 포함됨. 정작 보트킨은 그 주석엔 어떠한 언급도 안 되는데도.

따라서 러시아 망명자인 보트킨 교수가 고독 등의 이유로 스스로를 킨보트이자 젬블라의 쫓겨난 왕이라고 망상에 빠졌고, 존 쉐이드와 <창백한 불꽃>에 영향을 행사하려고 했다는 것이 일단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진실의 일부로 추정됨.

- 그렇다면 보트킨은 왜 젬블라를 망상하고, 또 ‘젬블라’에 관련된 그의 환상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주석 등을 근거로 볼 때, 킨보트가 과도하게 여성을 싫어하고 멀리하는 점이나 ‘어린이 합창단’ 등을 볼 때, 동성애자이거나 험버트처럼 소아성애가 있을 가능성이 있고, 이런 그의 성적 정체성 때문에 조롱받고, 때마침 고향마저 떠나 고립되었기에 자연스럽게 그는 도피처를 찾게 됨.

젬블라가 탄생한 것을 보이드는 아마 그가 미국으로 망명 온 이후, 그것도 대학에 와서 쉐이드와 알게 될 무렵으로 추측하는데, 대표적으로 킨보트가 세든 저택 주인 골즈워스 판사의 네 딸들에게서 찾는데, 딸들 이름이 각각 알피나 Alphina, 베티 Betty, 캔디다 Candida, 디 Dee로 ABCD 순서로 이어지고, 젬블라의 이어지는 4명의 왕과 왕비들의 이름 또한 알핀(Alfin), 블렌다(Blenda), 카를(Charles), 디사(Disa)를 연상케 함. 이런 근거들로 볼 때, 젬블라는 앞서 말한 것처럼 미국 망명 후, 고향을 떠난 고독한 보트킨이 은신처를 위하여 만듬.

또 이를 근거로 그라두스 관련하여 카를을 암살하려는 자들은 대개 킨보트를 조롱하던 동료 교수들이라는 게 또 다른 설명. 이런 자들은 물론 색인에 나오는데, 왜 대학 동료들은 색인에 없는지에 대한 설명이 되기도 함. 다른 형태로 색인에 이미 있으니까.

- 보트킨이 킨보트인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이 소설에 관련된 의문을 풀어주진 않음. 가장 대표적으로 해석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리는 부분은 그렇다면 이 텍스트의 저자들은 대체 누구인가?

물론 정석적인 해석으론 시는 존 쉐이드가 썼고, 이에 덧붙인 주석은 킨보트가 썼다는 것인데, 과연 독자가 유독 이것만 신뢰해야하는가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생겨남.

이미 그라두스가 실제론 판사를 살해하려는 미치광이였고, 킨보트는 카를 왕이자, 보트킨이었다는 점이 드러났는데, 시의 저자와 주석의 저자가 다른 사람이란 보장이 사라지고, 또 주석 자체도 신뢰할 수 없다는 게 드러났다면, 역시 모두 같은 사람이 쓴 거 아닌가, 그런 의문을 품을 수 있음.

다만 이런 의문도 여전히 문제인 것은, 그렇다면 대체 그 저자는 누구인가? 존 쉐이드인가, 스스로를 킨보트라고 생각하는 보트킨인가? 란 의문으로 쉐이드파와 킨보트파가 오랜 대립을 해옴.

보이드는 각각의 단독 저자설에 대해서 비판 및 보완을 하면서, 결국 단독 저자설 자체는 믿기 어렵다고 결론을 냄. 오만한 킨보트가 젬블라로 시를 쓸 수 있었는데, 왜 굳이 이를 써줄 쉐이드가 필요했겠는가, 혹은 가정적인 쉐이드가 자기 아내와 딸을 킨보트로서 조롱하거나 웃음의 대상으로 삼을 수나 있겠는가 등등. 물론 이는 대개 단독 저자설을 주장하는 이들이 반대파를 비판하는 논거들을 그대로 보여줌. 서로 싸운다고.

시는 쉐이드가, 주석은 킨보트가 썼다는 것에 대한 이런저런 근거를 대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볼 때, 단독 저자설 자체는 결국 그냥 이 모든 걸 나보코프가 썼다, 란 결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서 이런 결론을 내린 게 아닐까 싶음. 끝없이 의심하는 순간 결국 텍스트 내에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게 되니까.

하지만 단독저자설들이 각각 그럴싸한 근거를 가지고 또 그렇게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인데, 이는 전적으로 시와 주석들 사이의 여러 유사성들 때문임. 그리고 창백한 불꽃의 시와 주석이 독립적이라는 주장과 달리, 서로 얽혀있고 공유하는 점(거울 모티브, 쉐이드 일가와 젬블라 왕가 사이의 묘한 겹침 등)도 분명 있으므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함.

물론 단순히 시를 보고 킨보트가 거기에 근거하여 젬블라 망상을 썼다, 혹은 킨보트가 사실은 쉐이드에게 영향을 끼친 것이다 식으로 말할 수도 있겠지만, 보이드는 굉장히 파격적이면서도, 나보코프스러운 결론에 도달하고, 이 결론이 바로 ‘합’에 해당함.

- 보이드가 도달한 결론은 간단하게 말하면, 존 쉐이드의 딸 헤이젤 쉐이드가 유령이었다!  는 ‘유령-개입설,’이고 따라서 사실 <창백한 불꽃>은 유령‘들’이 나오는 소설이었다고 보이드는 주장함.

물론 보이드는 이를 소설 속에서 근거하여 그럴싸하게 이론을 전개하지만, 작품 외적인 요소도 일단은 주장 자체가 파격적이라 반발을 대비해서인지 짤막하지만 여러 차례 강조함.

나보코프가 호러 작가도 아니고, 갑자기 왜 유령이 나와? 라고 생각할 독자도 있겠지만, 보이드는 나보코프 전문 연구가라 다행히 노망이 들진 않았음. 이미 나보코프 본인이 유령이 나오고, 또 그 유령이 등장인물과 교류하고, 또 영향을 행사하며, 이렇게 유령이 나오는 거 자체를 퍼즐로서 독자들에게 시험하는 소설들을 여러 편 썼다는 걸 상기시킴. 적어도 나보코프의 세계 속에선 유령이 나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보이드는 거듭 강조한다.

또한 창백한 불꽃 자체가 죽음 이후에 관한 주제였고, 또 나보코프 본인이 늘 집착했던 주제는 ‘죽음 이후’ (혹은 폭넓게 ‘불멸’로 생각하자). 유령이 등장할 자리는 충분함. 

물론 소설 내에서 나오는 내용을 기반으로 유령에 대한 암시, 언급되는 레퍼런스나 나비=프시케=영혼 등으로 그럴싸하게 유령개입설이 전개되긴 하지만 자세히 적기엔 너무 많고, 간단하게 요약하면, 헤이젤 쉐이드가 각각 존 쉐이드가 창백한 불꽃을 쓰는데 영향을, 그리고 킨보트가 젬블라라는 도피처를 만드는데 영향을 주었다, 즉 두 텍스트에 공통으로 영향을 끼친 존재가 있기에 자연스럽게 시와 주석의 공유가 생겨났다는 게 보이드가 제시하는 창백한 불꽃 속 수수께끼의 해답임.

헤이젤 쉐이드는 죽음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고, 나비, 유령 등의 여러 모습, 혹은 상징으로서 살아남아 존 쉐이드와 킨보트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 정도로, 독자에게조차 모습을 직접 보이지는 않은 유령으로서.  

하지만 유령‘들’이라고 언급하지 않았는가? 유령이 이미 있는데, 또 없으리란 법이 있는가? 무엇보다 존 쉐이드는 시를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고, 그의 죽음 이후 킨보트는 주석을 썼다.

따라서 보이드는 헤이젤 뿐만 아니라, 존 쉐이드도 사후에 킨보트가 주석을 쓰는데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에까지 이르게 됨. 그가 미치광이에게 살해당한 이후 유령으로서 영향을 끼친 것이 바로 이 소설을 구성하는 3명의 주인공 중 유독 동떨어져 보이는 ‘그라두스’라고.

그라두스가 작중 ‘그림자’로 묘사되고, 쉐이드의 이름부터가 그림자라는 점, 그리고 ‘그라두스’의 원본이 되는 미치광이가 쉐이드를 죽임으로서 쉐이드가 진실로 ‘여새의 그림자’로 변해버렸다는 점 등등 더 많은 설명이 적절히 있지만, 생략.

또 ‘그라두스’ 자체가 킨보트의 젬블라 망상에서 필연적으로 쉐이드 살해 이후, 가장 나중에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그라두스를 일종의 쉐이드가 미완으로 끝난 <창백한 불꽃>을 킨보트의 손으로 완성시키려는 상징처럼 봄. 그리고 <창백한 불꽃>으로서 성공했고.

즉, 쉐이드 혹은 나보코프의 세계를 자신도 모르게 유령(혹은 의도치 않은 무언가)의 관여로 자신이 통제한다고 믿지만 아닌 부분이 있는 세계, 자신이 통제하는 세계, 그리고 그러한 내면을 알고 나서 완성시키는 세계로 해석하고, 이런 이유로 끝없이 조롱되고 비웃음당하는 음울한 험버트 때문에 나보코프의 세계를 이런 조롱의 세계로 흔히 오해하는 독자들의 편견을 깨고, 창백한 불꽃을 굉장히 긍정적인 세계라고 결론 내린다. 무엇보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죄다 죽어나가는데도 소설 전반적으로 웃기니까.

물론 킨보트, 혹은 보트킨은 이러한 비밀을 끝까지 눈치 채지 못한 채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혀서 결국 파멸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 나보코프 본인이 대놓고 킨보트는 결국 자살할 거다, 라고 작품 외적으로 말하여, 이를 비판하는 평론가도 있는데, 보이드는 그냥 텍스트만 훑어봐도 킨보트가 자살할 거라는 건 확정적이고 나보코프는 그냥 텍스트를 읽은 것에 불과하다고 옹호해줄 정도로 뭘 해도 안 되는 <창백한 불꽃>의 험버트가 바로 킨보트.
쉐이드의 손으로 젬블라라는 도피처를 시로 완성하려고 하지만, 모든 게 망상이었고, 거기에 자기가 사실 유령의 개입으로 어느 정도는 영향을 끼쳤지만 자기만 모르는, 뭘 해도 안 되는 녀석으로 취급되지만, 보이드는 이 소설의 결국 주된 존재를 쉐이드로 결론지으므로, 킨보트는 곁다리다.

또 과학 이론이 언제나 반증가능성이 존재하지만, 결국 세계를 설명하는 것처럼, 이렇게 수수께끼들 속에서도 결국 모든 것을 무의미하게 결론짓는 회의주의에 이르지 않고, 긍정할 수 있는 걸 나보코프의 위대함으로 예찬함.

물론 어디까지나 보이드 본인도 반증가능성은 있기에 자신의 파격적인 해석을 진리로 취급하진 않음.
하지만 그가 진리로 취급하는 것은 <창백한 불꽃>은 정말로 위대한 소설이고, 사실 다 따질 것도 없이 너무나도 재미있으니까 너도 얼른 수수께끼 도전 츄라이! 츄라이! 다.


그러니까 얼른 <창백한 불꽃> 다시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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