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 카포티 (2) <인 콜드 블러드> - 차가운 피 독서일기-소설




<인 콜드 블러드>는 소위 말하는 논픽션-픽션의 효시 중 하나로 평가받는 카포티의 걸작이지만, 사실 '논픽션-픽션'이라는 이 모순적인 말은 애당초 이러한 것이 성립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물론 카포티는 한 평범한 가정을 파멸로 몰아넣은 끔찍한 살인사건을 분명 '기자'적인 정신으로서 탐구하려는 면모도 있었을 것이며 동시에 소설가로서 이러한 비극을 픽션적으로 재현하여, 현실보다도 더욱 생생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야심도 있었을 것이다.
출간 당시에는 저널리즘보다 뛰어난 결과를 낸 대 성공으로 인하여 '논픽션'에 더 방점이 찍혔을지도 모르지만, <인 콜드 블러드> 자체가 유명해졌기에 실제 사건을, 카포티가 다루지 않았거나 왜곡하지 않았을 시선으로 다루려는 시선들이 생겨났고, 자연스럽게 진실을 소재로 카포티가 가공을 한 '픽션'에 오늘날 방점이 찍혔다고도 볼 수 있다.

비극적이게도 클러터 일가의 비극은 더 이상 <인 콜드 블러드>와 분리되어 이야기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진짜' 비극을 탐구하려는논픽션이 출간되는 이유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인 콜드 블러드>가 바꾼 진짜 진실을 탐구하겠다는 명목에 가까우니까.

다만, 애당초 카포티에게 왜곡의 책임을 물어야할지는 조금 회의감이 든다. 그는 애초부터 '픽션'이라는 형식으로서 이를 다루려고 하였고, 재연-다튜멘터리 영화,혹은 실화를 바탕으로 그렸다고 광고하는 영화처럼, 이러한 시도 자체는 결국 실제와는 다른 왜곡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논픽션-픽션'이란 명칭은 여전히 유효한게 아닌가, 이 책을 읽는다면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머리론 '픽션'에 방점이 찍혀도, 이 요사스러운 책은 픽션도 아니고, 그렇다고 논픽션도 아닌 듯 읽는 이를 혼란으로 몰아넣는다.
 드러나는 끔찍한 진실까지, 서로 어울리지 않는 기묘한 장면들이 요사스럽게도 어긋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 요사스러운 글은 그 부분들조차도 기괴하기 짝이 없다. 비극이 일어나기 전, 다소 지루함이 느껴질 정도로 평범한 한 행복한 일가의 모습을 그리는, 전원적인 장면에서부터 불길하기 짝이 없는, 범죄 로드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하는 살인마들의 멕시코 기행, 어딘가 중세 이단심문처럼 느껴지는 기괴한 재판 장면,거기엔 살인을 원인으로 한 평화로운 집단이 불길하게 붕괴되거나, 말 그대로 터무니없는 이유 때문에, 그것도 자신의 잘못과는 무관한 자연재해처럼 비극을 맞이한 이들과 남겨진 이들의 슬픔 및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 그리고 요사스러운 살인마들의 불운한 과거사까지 포함된다.

분명 재판에서 나온 말을 어느 정도 각색했을 뿐, 뉘앙스는 그대로 전달했을 범인들을 향한 검사의 진술은 마치 남부고딕물의 한 장면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기괴하기까지 하다.

무엇보다도 카포티는 적어도 문체상으론 이 모든 걸 '냉혈한'처럼 덤덤하게 서술하는 듯보인다. 하지만 그렇기에 아직도 이 냉혈한을 어떻게 마주하는 게 정말로 옳은 방식일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신화적으로 승화한 책 중 하나다보니, 자연스럽게 카포티를 다루는 영화나, 심지어 그가 이 책을 쓰는 과정을 다룬 영화까지, 워낙 다양한 해석을 우리는 마주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인 콜드 블러드>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오래 전, 카포티를 다룬 영화 소개였다. 아직도 그 영화 자체는 본 적 없지만, 인상 깊었던 것은 영화 속 카포티가 자신이 서술하는 살인마로부터 자신의 옛 모습을 엿보고, 자신의 엇나간 모습이라 상상하며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연민 및 동화를 느낀다는 소개였다.

아무래도 이런 선입관이 작용한 덕분인지, <인 콜드 블러드>를 나중에 읽게 되었을 때는 그가 두 명의 살인마 중 카포티와 유사한 이를 자신도 모르게 '미화'하는게 아닌가, 그런 감상에 빠져든 적도 있다.
물론 카포티가 그에게 조금 더 연민을 가지고 서술하는 것은 분명하다. 다른 한 명은, 카포티는 구제불능의 소아성애자로 그려낸다.

카포티가 이 살인마에게만 연민을 가진다고 보기엔 어렵다. 그를 둘러싼 비극적인 가정사가 그를 범죄의 길로 몰아넣은 걸 '설득력'있게 제시하는 점은 분명 그와 그를 범죄의 길로 몰아넣은 사회에 대한 연민과 비판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사실 이곳에 나오는 거의 모든 이들, 불행하게 살해당한 가족들에서부터 자신들 사이에 살인마가 있을지 서로 의심하는 마을 사람들, 사랑하던 이를 잃고 고통스러워하는 이들까지, 모든 이들에게 모종의 연민을 가진다. 어쩌면 그렇기에 그는 '차가운' 문체를 유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살인 전에서부터 살인 후, 범인들이 잡히고 재판에서 재판 후까지, 시간적인 과정을 소설가로서 능숙하게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을 재단을 하면서도, 여러모로 <인 콜드 블러드>는 찝찝함을 남긴다. '냉혈한'들에게 법의 심판은 내려졌을지도 모르나, 그 과정에서 석연치 않음은 남으며, 남겨진 자들은 계속 살아가면서도, 상처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면서도 여전히 그걸 마주하는 우리는 그 흉터를 상상할 수밖에 없다.

진짜 냉혈한은 무엇인가, 같은 의문은 사실 너무나도 진부하고 클리셰적이므로 이 책엔 어울리진 않는다. 책 속 냉혈한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전에, 이 책은 정확히 무엇인지를 먼저 고민해봐야하는 책이니까.

요사스럽지만, 분명 카포티의 정점 중 하나인 책임은 분명하다. 물론 앞서 말했듯, 카포티는 화려한 색채를 지녔으므로, 이 책 하나만으로 그의 세계를 단정할 순 없다. 그렇지만 카포티를 읽는데 <인 콜드 블러드>를 읽지 않는다면, 카포티를 읽지 않은 것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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