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환자의 꿈들> - 나보코프의 꿈 실험 프로젝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작년 <창백한 불꽃> 출간으로 붐을 다시 한 번 일으켰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20세기 대표적인 작가 중 하나이며 아직까지도 그가 남긴 방대한 글들에 대한 출판과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가장 최근엔 그의 미출간 산문, 인터뷰 모음집이 출간되었으나 그 전에 그가 남긴 독특한 원고와 그에 대한 연구 모음집이 출간되었다.


우선 J.W. 던이라는 철학자(?)가 있다. 원래 비행기 엔지니어지만, 철학적인 글(?)들도 출판하였으므로 이과와 문과 모두 섭렵한 인재라 할 수 있다.

그는 특히, 20세기 초, 상대성이론 등이 발표되기 전부터 시간과 꿈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졌으며 이에 대한 철학적(?)이고 기괴하며 이과적인 산문들을 출판하였다. 그는 특히 꿈에 주목하였는데, 그가 꿈과 관련하여 내세운 시간에 관한 이론은 아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고 한다:
꿈은 때때로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마치 데자뷰처럼 보여주기도 한다. 즉, 이는 시간이 선형적으로 흐르지 않으며 때론 거꾸로 흐른다는 증거다. 보다 정확하게는 인간이 느끼는 시간과 달리, 또 다른 차원(?)적인 시간선이 있고, 이에 따라, 고차원의 시간선에서 일어난 미래의 일을 현재 내가 꿈 같은 걸로 미리 알 수 있다, 등의 요지다.

물론 던의 이러한 꿈과 시간에 관련된 이론은 과학과는 조금 거리가 멀면서도, 그가 문학에 끼친 영향은 꽤 크다. T.S. 엘리엇이나 올더스 헉슬리, 혹은 제임스 조이스, 심지어 보르헤스까지 이 던의 시간-꿈에 관한 철학적 산문들을 즐겨 읽고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글을 쓰거나 평론을 쓰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거기엔 나보코프가 포함된다.

나보코프는 말년, 즉 그의 후기 작품들이 시작되는 시기엔 미국을 떠나 스위스 호텔에서 머물며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고, 이런 와중 1964년, 나보코프는 던의 책에 쓰인 꿈에 관한 실험을 본인이 직접 해보기로 마음 먹는다. 

간단한 실험이었다. 말 그대로 꿈 일기를 쓰는 일이었고, 침대 머리맡에 나보코프 본인이 늘 글을 쓸 때 이용하던 인덱스 카드 묶음을 놔두곤,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그것들을 적어 내려갔다. 그 후, 이러한 기괴한 꿈들이 미래에 본인이 경험한 일들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는지, 말 그대로 시간이 거꾸로 흐를 수도 있기에 미래의 일을 꿈에서 미리 경험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관한 실험이었다.



이 책의 편집자 바르바탈로는 몇 가지 점에서 나보코프 본인이 이러한 실험을 단순히 호기심에서 한 것이 아님을 제시한다.


우선 나보코프 본인은 평생에 걸쳐 불면증으로 고생하였으며, 특히 말년의 스위스 시절엔 이러한 기질이 심해졌다. 이런 덕분인지 그는 자다 깨는 일을 하루에도 몇 차례 반복했고, 이에 따라 하루에도 수많은 꿈들을 꾸곤 하였다. 이는 나보코프의 꿈 일기에서도 하루에도 여러 종류의 꿈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난다. 말 그대로 한 불면증 환자의 꿈들인 것이다.

두번째론 던의 이러한 이론 자체가 나보코프 본인이 그걸 알기 전에도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던이 자신의 저서에서 제시한 꿈 실험과 비슷한 방식으로 이따금 자신의 일기나 편지 등에서 자신이 꾼 꿈을 기록하고 있었다.


다만, 본질적인 차이점이 있다면, 본래의 과학적인 던과 달리, 나보코프 본인은 어느 정도 유령이나 사후 세계 같은 존재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진지하게 반쯤 믿는 사람이었다. 이는 그의 작품 세계에서도 수많은 유령들의 존재로도 얼핏 나타날지 모른다. 


이 책은 이러한 나보코프가 1년간 자신이 꾼 꿈들에 대한 기록, 그리고 존 던의 이론에 대한 간략한 설명, 실험을 하기 전에도 나보코프 본인이 기록하던 꿈들에 대한 기록, 그리고 나보코프 작품 세계에서 나타나는 꿈 장면들에 대한 인용과 그에 대한 분석으로 나뉘어진다.


사실 존 던의 이론에 대한 실험 자체는 별 다른 의미가 없다. 물론 어떤 꿈에서 나보코프 본인은 존 던이 제시한 이론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코멘트를 달기도 하였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나보코프 본인 또한 꿈에 대한 실험이라기 보단 꿈 일기를 쓰는 쪽에 가까워진다.

그렇다고 나보코프 본인의 꿈들이 그의 산문들처럼 큰 흥미를 끌기엔 여러모로 아쉽다. 말 그대로 이 모음집은 개인의 사적인 꿈들에 관한 기록이고, 거기에서 때때로 나보코프 본인이 평생 트라우머처럼 느꼈던 불의의 사고로 암살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나 나비들에 대한 집착, 혹은 언어유희 등을 느낄 순 있으나, 이는 그의 전기를 읽어도 충분히 느낄 법한 일들이다.


그렇지만 이책의 진정한 진가는 그 후 이어지는 나보코프의 작품들 속에서 나오는 꿈에 관한 장면들과 그에 대한 연구가의 분석이다.


작가가 쓴 소설 속 꿈과 인간으로서 꾼 꿈의 묘한 겹침 속에서 나보코프의 소설들을 다시 처음부터 읽어야하듯, 다시 한 번 그의 꿈 일기들로 되돌아가며 무엇보다도 이러한 꿈에 관한 기록과 나보코프 본인이 그 과정에서 체감한 이론 등은 그의 가장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대작 <아다, 혹은 열정>부터 시작하는 나보코프의 후기 소설들에서 '시간'이 어떻게 재단되는지, 그의 꿈들을 통하여 분석가는 보여준다.


'장편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예전부터 많은 이들이 말하였듯, 시간을 마음대로 재단하는 것이다. <율리시스>처럼 수백 페이지로 단 하루를 묘사할 수도 있고, 혹은 프루스트처럼 수천 쪽을 통하여 자신의 시간을 일일히 묘사하는 일도 가능한 것이 바로 장편 소설, 혹은 노블 Novel의 세계다. 공교롭게도 이러한 작가들은 나보코프가 영향을 받고 연구한 이들이며 나보코프 본인 또한 책에 인용된 미출간 일기에서 자신의 소설에서 주요한 관심사를 시간과 공간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이는 꿈도 마찬가지다. 소설처럼, 꿈에서도 시간은 정해진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리고 나보코프의 후기 작품 세계는 이러한 꿈 일기와 꿈에 관한 실험 이후, 말 그대로 '후기 작품 세계'의 시작이 되엇다고 편집자이자 연구가는 논한다.



물론 분석, 혹은 평론 자체가 모든 점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고, 때론 사족이라 느껴지는 부분도 더러 있지만, 나보코프를 좋아하는 독자, 특히 그의 작품들을 거진 섭렵한 이들이라면, 필수적으로 가져야할 또 다른 나보코프의 사적이자 공적인 글 모음집이다. (저자가 명시했듯, 단순히 자신의 일기 같은 곳에선 두리뭉실하게 쓰지만, 남에게 보여주는 편지에서 나보코프는 공들여서 꿈을 묘사한다)



그런 만큼, 사실 이 책이 국내에 곧바로 소개되는 일은 물론 힘들겠지만, 바람직하지 않다.


그에 앞서서, 이러한 꿈 실험 이후 시작된 그의 후기 세계를 시작하는 나보코프의 대체역사 소설이자 가장 방대한 소설인 <아다, 혹은 열정>이 곧 국내에도 번역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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