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먼 멜빌 (4) <사기꾼, 그의 가면 무도회> - 신뢰는 계속된다 프로젝트 - 허먼 멜빌




4월이 향기나는 소나기를 내릴 때면
(중략)
그리하여 사람들은 순례를 간절히 바라고
순례꾼들은 낯선 해안을 찾아
수많은 땅에 알려진 머나먼 성지들로 향하니,
그 중 특별히 모든 잉글랜드 주(州)의 끝에서부터
켄터베리까지 그들은 여행을 떠난다
- 제프리 초서, 켄터베리 이야기




옛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고 4월에 성지순례를 떠났다면, 이제 멜빌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4월에 배 안에서 가면 무도회를 하며, '믿음'을 기만한다.


<사기꾼: 그의 가면 무도회>는 허먼 멜빌이 1857년,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발표한 장편 소설이며, 이후 멜빌은 소설 쓰기를 수십년 간 포기한 채, 시에만 몰두하다, 마지막에서야 <빌리 버드>로 돌아온다. 국내에서도 멜빌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명목으로 출판되었는데, 사실 굉장한 모험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이 장편은 멜빌의 수수께끼 같은 모든 글들 중에서도 제일 난해하고, 어려운 글이다. 물론 멜빌은 언제나 수수께끼 같았고, 그 덕분에 살아생전 그는 실패를 거듭했고, 끝내 패배했다.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지만, 역시나 이 장편 또한 당대엔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로 취급받으며 멜빌의 기나긴 실패의 역사에 한 장을 기록한다.

그렇지만 '이해할 수 없는'이란 당대의 평가의 상당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듯하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책은, 이해할 수 없기에 멜빌의 가장 난해한 작품이 된다.



겉으로 보기에 이 소설은 에이허브의 광기나, 바틀비의 부조리함이나 피에르의 애매모호함과는 달리, '풍자'이기에 유머스럽다고 착각될 여지가 다분하다.

애당초 '4월 1일' 만우절을 배경으로, 미시시피 강을 항해하는 한 여객선을 배경으로, 거기에 있는 수많은 인간군상들과 '사기꾼'의 수많은 대화들을 통하여, 미국 사회를 풍자하고, 수많은 이들을 패러디하고, 또 '켄터베리 이야기'의 형식을 모방하여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들을 보여준다.


이러한 모든 중심에 있는 것은, 제목에서도 나와있듯, <사기꾼 Confidence-Man>이다. 제목의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 결국 이 여객선의 항해는 사기꾼의 '가면무도회'이며, 그는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으로서 여객선의 사람들 틈 속에서 그들을 속이고, 그들의 신용을 사며, 때론 그들의 위선을 드러내는 등 겉으로 보기엔 전통적인 문학에서 광대들의 역할을 수행하는 듯 보인다.


'믿음/신용 Confidence'처럼, '사기꾼'의 어감 자체는 '신용사기꾼'으로 표기하는 것이 조금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여객선의 이름이 '믿음 Fidele'으로 굳이 멜빌이 설정한 것까지, 시종일관 강조되는 것은 '믿음과 신뢰'다. 사기꾼과 배의 사람들은 이 믿음을 이용하여 서로를 속이며, 사기꾼은 언제나 사람 간의 믿음과 신뢰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이야기가 점점 진행될 수록, 우리는 점차 이 사기꾼을 신용할 수 없게 된다.

대체 이 소설의 '사기꾼'이란 누구인가, 아니, 무엇인가?


물론 이러한 질문은 멜빌의 작품들 속에선 흔해빠진 의문이며 멜빌의 본질과도 같은 의문이다.
에이허브는 누구인가, 모비딕은 무엇인가, 바틀비는 누구이며 빌리 버드는 누구였고, 또 피에르를 무엇이었는가?


사기꾼은 누구인가, 란 의문은 이러한 의문에 질문 하나를 더하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각자가 제각기 다른 의문을 가지듯, 사기꾼에게도 그만의 의문이 있는 법이다.


처음 '사기꾼'으로 보이는 이가 등장하여, 그의 '사기'를 성공시킨 후에 우리는 그가 또 다시 등장할 거라 여기지만, 이어지는 '사기꾼'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런 일은 매번 반복된다. '가면 무도회'란 말처럼, 가면을, 외양을, 때론 행동이나 말투, 생각을 바꿔가며 '사기꾼'은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오히려 때론, 사기꾼과 대화를 나누었던, 사기꾼의 신용을 '샀던' 이가 마치 전염되듯, 다음 이야기에서 '사기꾼'인양 등장하는 모습을 보며, 결국 '사기꾼'이 존재는 하는가, 란 의문까지 수수께끼는 이어진다.

수많은 모습으로 등장하는 '사기꾼'은 단일한 존재인가, 아니면, 그저 배 안의 수많은 사기꾼들이 있다는 뜻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결국 배 안의 모두가 사기꾼인가? 

마치 모비딕이 그러하듯, 때론 이 사기꾼은 초자연적인 존재나 사람들을 홀리고 유혹하는 악마 같은 무언가가 아닐까? 


이러한 의문들 속에서 사실 이 소설의 '내용'조차 멜빌에게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버겁게 진행된다.


물론 멜빌은 모든 걸 풍자한다. 그리고 비판한다. 겉보기에 그는 당시 그가 살던, 점점 물질화되는 미국과 신뢰가 사라지고, 모두가 '사기꾼'이 되어버린 사회를 비판한다. 

그러나 그가 차라리 단순하게 비판을 했다면, 멜빌은 패배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겉보기의 상징들 속에서 수많은 인물들이 들려주는 각자만의 이야기는 각자의 유사철학을 때론 보여주며 거기엔 물질주의나 이에 대한 비판, 혹은 인간에 대한 신뢰나 인간혐오 등이 난잡해보일 정도로 나타난다. 거기엔 때론 소로우나 에머슨 같은 당대 미국의 사상가나 작가들에 대한 풍자가 있고, 또 이에 대한 멜빌의 견해가 있기도 하다. 타키투스 같은 고전 작가들을 풍자하거나 멜빌 본인이나 그가 존경하던 호손을 풍자하기도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멜빌에게 익숙해져야 한다.


그럼 이 항해의 이야기는 어디로 향하는가? 명확한 목적지는 없다. 

명확한 주인공이 없으며, 중심 이야기가 없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당대에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책으로 평가받았지만, 오늘날 소설에 제법 익숙한 독자들은 이러한 구성 자체에서부터 현대적인 소설을 느낄 것이다. 
(이러한 점들 덕분에 멜빌의 재평가 이후, 이 소설 또한 멜빌의 현대적인, 시대를 앞선 점으로 재평가를 받아왔지만, 멜빌 본인은 어찌되었든 실패했다)



쭉 이 소설이 난해하며 수수께끼 같고, 어딘가 부정적으로 내내 묘사한 것 같지만, 꼭 그렇진 않다. 멜빌에게 익숙하지 않다면, 그럴 지도 모르지만, 멜빌에게 익숙하다면, 수수께끼는 여전해도, 우리가 즐길 수 있는 멜빌의 마지막 '완성된' 소설 작품이니까.

멜빌의 비판이나 풍자 자체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그렇기에 그는 죽고 나서야 재평가되었고, 그의 모비나 바틀비 같은 이들의 문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람들을 자극하는 문제가 되었다.

'사기꾼' 또한 그러하다. 

마치, 만우절이 끝나고, 배의 항해가 끝나자, '거짓'을 말할 수 있는 날이 끝나고, 마치 다시금 사람들 사이의 신뢰와 믿음이 돌아올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은 그저 멜빌의 장난에 불과하다.

낮이 어두워지고, 모든 것이 희미해지고, 떠나야할 시간에서조차, 멜빌이 마지막으로 강조하듯, 무언가는 우리의 뒤를 따라올 것이고, 가면 무도회는 계속될 것이다.

정확히 무엇이 뒤따르고, 계속될 것인가? 알 수 없다. 그저 신뢰를 강조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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