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먼 멜빌 (5) <피에르, 혹은 모호함> - 피에르는 고독했다 프로젝트 - 허먼 멜빌



<수백 수천의 인간 존재가 있는 도시의 한 사람으로서, 피에르는 극지에 있는 것처럼 고독했다.>




작품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피에르, 혹은 모호함> 같은 작품처럼 모호하고 알 수 없는 책도 없을 것이다. 

멜빌의 작가로서, 인생의 몰락의 시작은 이미 <모비딕>이 시작하였다는 것은 <모비딕>이 전설이 된 만큼 너무나도 유명한 사실이지만, 상대적으로 그 끝을 장식한 것은 <모비딕>의 쌍둥이 형제였다는 점은 덜 알려진 듯하다.

그래, 이 소설은 <모비딕>의 쌍둥이 형제다. 만약, <모비딕>을 더 잘 알고 싶다면, 부득이하게 <피에르>까지 읽어야할지도 모르겠다.

내용적인 면에서 해설을 해주거나, 이야기가 이어지거나 그런 뜻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피에르>는 '<모비딕>을 쓰는 과정에 대한 소설'이기도 하며, 그런 점에서 <모비딕>의 쌍둥이와도 같다. 혹은 부모란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지만.


물론 이는 <피에르>의 극히 일부분만을 평가한 면이며, <피에르>라는 한 권의 책을 평가할 순 없는 기준이다. 사실, 이미 이 책을 어떻게 평가해야할지는 멜빌 본인이 제목에서부터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었다.

'모호함'


이 책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모호하다. 

언제나 배와 바다, 항해에 관해 자신의 체험을 쓴 멜빌은 유독 이 소설에서만은 뭍에서의 일을, 피에르 글렌딩이라는 한 젊은이의 모호함에 대해 글을 쓴다. 물론 멜빌 본인의 체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멜빌의 가장 자전적인 소설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이 시작되면, 평범한 연애에 관한 로맨스 소설처럼, 피에르 글렌딩의 유서 깊은 가족의 역사와 저택과 재산에 관한 이야기를 멜빌은 시작한다. 젊고 아름다운 피에르는 소꿉친구이자 금발의 루시와 약혼을 했고, 어릴 적 아버지 피에르가 불행하게 세상을 떠났지만, 어머니와 화목하게 살아가고 있는 듯보인다.

이대로만 간다면, 피에르 글렌딩의 연애담이나 성공담으로 이야기가 흐르지 않을까, 그렇게 예상되지만, 멜빌은 순간 모든 것을 비틀어버리기 시작한다. 적어도 당대 독자들은 결코 원하지도, 예상하지도 못한 방향으로.

물론 조짐은 처음부터 있었다. 어딘가 결여된 것처럼 부족한 피에르, 상징적으로 '누이'의 존재를 애타게 원하던 피에르, 피에르와 어머니가 서로를 엄마나 아들로 부르는 대신, 누나와 동생으로 서로를 부르는 다소 기괴한 부분에서부터 시작하여, 어딘가 잘못되고 비틀린 것 같은 피에르를 둘러싼 세계의 묘사까지. 그러나 멜빌은 모든 것을 모호하게 비틀어간다.

갑자기 피에르에게 자신의 이복누나, 그의 죽은 아버지와 프랑스 귀족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라 주장하는 이사벨이 나타나고, 애매모호하지만, 행복했던 피에르는 자신이 믿고 존경하던 모든 가치가 붕괴됨을 느낀다. 그는 자신의 누이에게 '글렌딩'이라는 성을 되찾아주면서도, 누구도 그녀가 사생아라는 걸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어머니 앞에서 이사벨과의 결혼을 선언하고, 부부로서 쫓겨난다.

그리고 <피에르>는 이러한 세상에 던져진 순진했던 피에르의 방황담을 그린다.



하지만 역시나 모호하다. 피에르의 방황담과 이야기는 어떻다고, 한쪽으로 단정내리기엔 너무나도 모호하다.


프로이트주의자들이 좋아할 법한 요소와 전개가 이 책 이곳저곳에 자리잡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어디까지나 남들에게 속이기 위한 방편이지만, 자신의 '이복 누이'와의 결혼, 그리고 어머니와의 기괴한 관계, 무엇보다도 시간이 지날 수록 피에르에게 집착하는 듯한 이사벨의 모습이나 후에 피에르를 찾아오는 피에르의 약혼녀 루시, 혹은 이 모든 것이 애당초 거짓말에서 시작된 게 아닐지 의심하기도 하는 피에르의 불안 등 분명 프로이트적인 '심리소설'로서의 선구자일지도 모르겠다.

글렌딩 가문의 알게 모르게 좋지 않은 비밀이 숨겨져있을 거란 듯한 암시나, 피에르의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지며, 진실을 아는 초반부, 혹은 '뉴욕 도시'로 와 겪는 배신 등 멜빌이 언제나 집착했던 미국의 모습을 담고 형성하려는 소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모호한 것은 피에르의 방황담이 향하는 길이다. 


<피에르는 세계에 책 한 권을 주기로 하였다, 세계가 경탄과 즐거움 속에 찬양할 그런 책을.>


쫓겨난 순진한 청년 피에르는 이전부터 햄릿에 암시되며, 단테 등을 즐겨 읽는 등 문학적 소양에 관한, 말 그대로 험한 세상을 모르고 순진한 기질에 관한 암시는 줄곧 있어왔다.

그런 그는 다른 멜빌의 주인공들이 겪는 것처럼, 철학 팜플랫 등 기괴한 철학을 접하고, 먹고 살기 위하여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 작가가 될 것을 결심하는 것은 멜빌의 세계에서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애당초 피에르는 멜빌이 그러했듯, 그럭저럭 찬사를 받은 시를 몇 편 발표하기도 했던 말 그대로 총망받는 젊은 문학청년으로 묘사되니까.

그러나 다시 한 번 멜빌은 이제는 익숙해졌을 법한 독자들을 모호함의 길로 이끈다.

<나는 세계를 증오한다, 그리고 포도처럼, 인류의 모든 폐를 짓밟곤 으깨어 그들의 숨을 꺼낼 수 있다, 슬픔과 위선을 생각하고 있으면, 진리와 거짓을 생각하고 있으면!">

이사벨과의 관계, 그를 찾아온 루시와의 관계, 거기에 그들이 만났던 기괴한 예술가들의 모임이나 다시 피에르와 글렌딩 가문 사이의 다툼 등 바깥의 일이 진행됨과 동시에,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피에르는 이제 미칠 듯이 자신의 '걸작'을 출판하기 위하여 몰두하기 시작한다.

<그 누가 황량하고 오한이 드는 방 안 피에르의 생각과 느낌을 말해줄 수 있을까, 마침내 그가 자라나며 더 지혜롭고, 깊어질수록,
그가 빵을 얻을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는 그 생각이, 그가 지금 창밖으로 자신의 거대한 책을 내던지곤, 한 달 내 가장 긴 소설, 얕고 아무것도 아닌 소설에 몰두한다면 합리적으로 공감과 돈을 얻을 수 있다는 그 생각이 불쑥 찾아왔을 때.
그러나 이제는 게걸스러운 심오함이 그에게 열렸고, 그의 모든 생기를 집어삼킨다.>


이제 소설 후반부의 상당부분은 작가가 되어가는 피에르에게 더욱 집중하기 시작한다. 그의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완전히 분리된 것은 아니지만, 인간으로서의 피에르와 달리, 작가로서의 피에르에겐 아무 것도 아닌 일이나 마찬가지다.

<수백 수천의 인간 존재가 있는 도시의 한 사람으로서, 피에르는 극지에 있는 것처럼 고독했다.>

우리는, 멜빌을 아는 독자들이라면 피에르가 쓰고 있는 이 소설의 제목을 이미 알고 있다.

이런 면에서 <피에르>는 다시 한 번 <모비딕>을 써내려가는 피에르에 관한 소설이 되어버린다. 그러곤 멜빌의 <모비딕>이 멜빌을 파멸로 몰아넣었듯, 작가로서의 피에르도 파멸하며, 그와 동시에 이사벨로 시작된 그의 몰락한 인생도 같이 파멸한다.


때론 집요할 정도로 심리를 묘사하지만, 때론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불쑥 사건을 진행시키거나, 때때론 이야기의 진행은 무의미하다는 듯 순식간에 끝내거나, 혹은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양 작가가 되어가는 피에르의 내면에 집착하는 등 이 소설의 모호함은 그럼 대체 무엇인가?

피에르는 분명 어떤 의미에선 멜빌 본인의 자전적인 인물일지도 모른다. 일정 부분, 피에르가 <모비딕>을 써내려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포부나 의도 등은 분명 멜빌 본인의 <모비딕>에 대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피에르는 멜빌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밖에 없다. 

그럼 멜빌이 '의도적으로' 언급했던 것처럼, 피에르는 멜빌의 햄릿이나 단테일까? 오히려 멜빌이 함정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보여준 것에 가깝지 않았던가?

피에르는 이 소설 내내 모호하면서도, 때론 단호하고, 그러면서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은 일을 하면서 그 내면이 서술되지만, 정작 그러한 행동의 명확한 이유가 될 순 없기에 더더욱 독자들에겐 모호한 무언가로 다가온다. 


물론 '모호함들 Ambiguities'이므로 단순히 피에르의 모호함 뿐만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피에르의 세계의 모호함도 포함되겠지만, 그렇다고 모호함의 해답이 될 것 같진 않다. 가령, 피에르와 그의 적 글렌의 어릴 적 관계나 이후의 관계는 억압된 동성애적 관계로 느껴질 정도로 멜빌의 작품들에서도 특히 더욱 강조되기도 하는데, 영향이 있는 걸까? (실제 퀴어비평으로 피에르를 분석하는 경우도 많다) 

<"모든 것은 끝났어, 그리고 당신은 그를 알 수 없을 거야!">


물론 바틀비가 그러하고, 모비딕이나 사기꾼, 빌리 버드 등이 그러하듯, 그리고 <피에르> 속에서 멜빌이 외치듯, 피에르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을 거다.

멜빌을 좋아하는, 혹은 더 익숙해지고 싶은 이라면 멜빌이 남긴 이 기묘한 심리소설이자 <모비딕>의 쌍둥이를 직접 대면하여 마주하는 일 뿐....

그저 모호함....모호함.








덧글

  • 모비딕 2020/04/13 11:31 # 삭제 답글

    모비딕을 읽고 있는데...너무 고통 스럽습니다 포기하고 싶습니다... ㅜㅜ 모비딕의 고통이 5라면 율리시스는 어느정도인지 알려주실수 있으신지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습다
  • JHALOFF 2020/04/13 23:01 #

    10점 만점의 10이요
  • 모비딕 격파 2020/04/14 18:02 # 삭제 답글

    5점 격파하고 10점도 언젠가 도전해보겠습니다
    이 블로그가 나무위키 보다 좋은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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