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라는 이름의 게임 ???


아 이맛은 뻘글의 맛이로구나-!

그 동안 나는 <롤리타>를 찬양했지만, 주로 문체 부분이었다. 그래서 한 번 다른쪽에서의 <롤리타>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어본다.

<롤리타>를 어떻게 생각할 지는 독자의 자유다. 
험버트를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볼 수 있고, 롤리타 또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인물로 볼 수 있다.

나는 우선 나보코프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나보코프가 가장 집착했던 주제는 예술가와 놀이다.

<롤리타> 자체는 "롤리타 컴플렉스" 란 용어가 나올 정도로 소아성애자에 관한 대표적인 소설로 인식된다.

그러나 사실 <롤리타>에서 이런 소아성애 부분은 그저 '소재'이자 '미끼'일 뿐이다.

나보코프는 소아성애자가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그가 '성적인 것'에 집착하여 소설들을 쓴 것도 아니다.
어찌보면 독자들을 자극시키기 위한 좋은 소재(낚시용)였고, 나보코프는 성공하였다.

험버트 자체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는 예술가다.
험버트와 마찬가지로 그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퀼티도 예술가이며,
롤리타는 그들의 예술의 원천이다.

그러나 그들은 필연적으로 파멸할 수밖에 없다. 왜냐? 그들은 단지 소설속의 예술가에 불과하며, 
진짜 예술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짜 예술가는 누구인가? 바로 작가인 나보코프 본인이다. 나보코프는 진짜 예술가답게, 
험버트와 퀼티를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고, 파멸시킨다. 그리고 자신은 진짜 예술가로서 만족을 느낀다.

왜 나보코프는 이러한 인형극을 하는 것일까?

간단하다. 그는 이 인형극을 가지고, 독자라는 도전자와의 게임을 즐긴다. 

<롤리타>는 나보코프와 독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게임이다.
독자는 나보코프가 숨겨놓은 단서들을 찾아, <롤리타>의 해답을 찾기 위하여 애쓰며,
나보코프는 그런 독자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예술가로서의 만족감을 느낀다.
애초에 나보코프 본인은 철저한 예술지상주의자며, 천재 숭배자였고, 스스로를 천재라고 믿었다.

<롤리타>가 게임이라는 것은 이미 서문에서부터 잘 나타난다.
'서문'에서 이미 작가는 이것을 '진실' 같이 꾸며놓는다.

그렇지만 이것은 독자에 대한 농락에 불과하다.
험버트의 수기가 끝나고 나서 등장하는 것은 "<롤리타>라 불리는 책에 관하여"란 진실이기 때문이다.
험버트의 수기가 끝나자마자 작가는 이것이 단순한 소설임을 알려준다. 소설의 시작부분에서 '진실'같이 꾸며놓은 것과 
정반대의 일이다.

애당초 험버트의 수기 자체가 거짓으로 가득찬 글이다.
험버트의 수기는 철저하게 '험버트'란 인물에 의하여 작성된다.
오직 험버트의 관점만이 제시되며, 모든 것이 험버트의 예술에 의하여 가려진다.
독자는 본질적으로 <롤리타>의 진실에 접근할 수 없다. 그저 험버트의 가면 아래 숨겨진 것을 추측만 할 뿐이다.

나보코프는 철저하게 메세지를 거부한다.
그는 예술만을 추구하며, 소설은 그에게 있어 유희일 뿐이다.
그는 애당초 단순히 소설에 불과한 <롤리타>에 사실성을 부여하고, 진실을 없애여,
독자로 하여금 <롤리타>란 이름의 미로를 탐구하게 한다.
'소아성애'란 자극적인 소재 또한 독자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나보코프의 뛰어난 글솜씨가 그 소재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결국 나보코프는 성공하였다.
진실 없는 미로에서 헤메고, 해석하는 독자를 보며, 작가는 즐기는 것이다.

작가와 독자의 게임에서 독자가 작가의 의도대로 놀아났어도,
그것은 결코 쓰라린 패배는 아니다. 오히려 달콤한 패배일 뿐.
진실이 없다는 것, 모든 해석이 의미없다는 것은 곧 모든 해석이 의미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그러니 우리 모두 <피네간의 경야>를 읽어야 됩니다.
<피네간의 경야>를 지릅시다.
지금 당장 인터넷 서점으로 이동하셔서, 카트에 담으세요.


덧글

  • as 2011/08/20 20:28 # 삭제 답글

    잘읽었습니다. 글을 써 본적 없어서 모르겠지만 작가라면 응당 그런 마음쯤은 가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자극적인 소재로 여러가지 반응이 나오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재미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책을 읽으면서 되도록이면 그런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ㅠㅠ
    작가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책이 독립된 세계가 아닌 작가의 손끝에서 나온 부산물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니까요
    책속의 가상세계에 깊이 빠지다가도 그것을 쓴 작가도 결국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이 가상일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자신이 다른사람의 상상속에 놀아난 것일 뿐이라는 생각에 수치스럽지 않습니까
    그 책이 아무리 인간의 고상한것과 인간을 뛰어넘은 무엇인가를 쓰려고 했다 해도 그것을 쓴 작가 역시 먹고 자고
    싸는 인간이겠지요
  • JHALOFF 2011/08/20 23:10 #

    뭐, 사실 저거 자체는 롤리타에 대한 제 주관적 해석이 아니라, 그냥 나보코프와 롤리타에 관계에 대한 잉여글이었습니다. 어차피 작가가 작품을 쓴 이후로는 작품은 독립된 존재죠. 해석은 무한한 자유입니다.
  • as 2011/08/20 20:31 # 삭제 답글

    완전하지 않은 인간이 책 안의 완전한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님말대로 패배한느낌?ㅠㅠ
  • 나디르Khan★ 2011/08/21 00:08 # 답글

    잘 읽었어요 +_+
  • JHALOFF 2011/08/21 12:06 #

    감사합니다.
  • 시무언 2011/08/21 09:58 # 삭제 답글

    어찌보면 추리소설은 "게임으로서의 문학"을 극한으로 추구하는 장르같습니다...만 아마도 그래서 기세가 예전같지 않은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원패턴이 되다보니...

    여담이지만 움베르토 에코가 쓴 그라니타도 아주 골때리죠.
  • JHALOFF 2011/08/21 12:07 #

    사실 추리소설=독자와 작가 사이의 게임은 작가 마다 다른 것 같습니다. 서술 트릭 같은 것은 사실 '속이는 행위'로도볼 수 있으니, 공평한 게임이라고 할 수는 없겠죠.
  • 시무언 2011/08/21 12:54 # 삭제

    정확히는 엘러리 퀸이나 존 딕슨 카 부류의 "공평한 게임"을 추구하는 종류가 좀 쇠퇴하고 오히려 "불공평한 게임"을추구하는 쪽이 더 오래 살아남는것 같습니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한때 추리팬들에겐 욕 좀 먹었지만(불공평하다고) 지금은 추리의 여왕 소리를 듣는것만 해도 그렇고 말이죠.
  • 재윤 2012/01/23 16:02 # 답글

    전자오락 가운데
    리멤버11이라고 닮은 꼴의 작품을 떠올려봅니다.
  • JHALOFF 2012/01/24 01:03 #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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