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스와 포크너 까기 ???

 이 글 자체도 반은 장난으로 쓴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조이스는 찬양하는 작가 중 하나이며, 포크너의 작품들도 꽤 즐겁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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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가 까여야 마땅한 점은 그가 아일랜드 미치광이라는 점에 있다.

분명 조이스는 글을 잘 쓰는 문장가다. 그는 정상적인 글을 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과격한 실험가다. 그는 문학계의 매드 사이언티스트다.

소설은 어떻게 성립되는가? 누군가가 그것을 읽어줘야한다.

그렇지만 조이스는 작가로서의 독단으로 반드시 지켜져야하는 독자-작가 관계를 무너뜨렸다.

<율리시스> 까지는 뭐, 좀 봐줄 수도 있다.

하지만 <율리시스> 자체도 솔직히 너무 쓰잘데기 없이 길다.

'의식의 흐름'이란 미명 아래 조이스는 필요없는 부분까지 구겨넣는다.

사실 그에게 이유는 있었다.

그는 한 권의 책 속에 모든 것을 집어넣으려 했다.

그는 말 그대로 보르헤스의 <모래의 책>을 창조하려고 도전했다.
이런 그는 오만하다고 밖에 표현할 도리가 없다.

그가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솔직히 후빨하는 연구자들의 공로도 크다.
인쇄 실수로 마지막 장에 점 하나 찍인 것을 가지고 수십편의 연구 논문 발표하는 것이 연구자들이다.

말 그대로 조이스는 '읽는 사람 엿먹이기 위해' 이렇게 썼다. 이 얼마나 사악한 변태인가?

그에게 잘 어울리는 것은 SM바다. 한 쪽에 안대 차고, 채찍 휘두르며, 독자에게 "이 돼지야-! 네 놈은 나의 작품을 읽어야해! 네 놈은 나의 마루타다! 마루타! 이히히! 읽어라, 읽어!" 라고 외치는 것이 조이스다.

조이스의 똘끼는 <피네간>에서 그 정점을 달린다.

<율리시스>가 읽기는 어렵지만, 못 읽을 소설은 아니다.

과연 <피네간>을 '소설'이라 부를 수 있는가? 
이것을 누가 읽고, 이해할까? 현재까지 소설의 기본인 '줄거리'조차 논쟁의 대상이 되는 책을!
40여개의 언어를, 그것도 절반 이상이 조이스의 문학적 실험이란 명목 아래에 만들어진 합성어들을-!

조이스는 너무나도 '실험'에 심취하였다. 그건 더 이상 소설이 아니다. 그저 희대의 미치광이가 낳은 언어 실험일 뿐이다.
피네간은 조이스의 프랑켄슈타인이다. 그저 연구자들을 학살할 뿐인 책. 일반인이 읽을 필요는 결코 없다.
근데 나는 읽었잖아? 나는 안 될거야, 아마.

사실 이런 그의 행동은 문학의 종말을 야기할 뻔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치 현대 미술에서 '변기 하나' 놓고, 존나 비싸게 팔리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 하는 것처럼,

조이스의 이런 문학적 실험이 성공하여, 널리 보급되었으면, 
오늘날 문학은 이런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는 현대미술 처럼 되었을 것이다.

조이스의 똘끼적인 문학 실험이 그 자신에게서 끝난 것은 독자로서는 축복이다.

포크너. 성은 마음에 드는 친구다.

포크너는 한 마디로 조이스 짝퉁이다.
그가 주로 쓰는 의식의 흐름 기법도 사실상 조이스 아류다.
중국산 양식어, 중국산 짝퉁이 포크너다.

포크너가 진정으로 까여야할 점은 어중간한 점이다.

포크너는 미국 작가면서도, 유럽 문학을 지향한다.
그는 허세 마초 헤밍웨이나 빨갱이 스타인벡, 맥주마시며 디진 피츠제럴드와는 다르다.
그는 확실히 무엇인가 인간의 근원에 도전하려고 했다.

뭐, 여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그가 어중간하다는 것이다.
그는 어중간하다. 어느 쪽에도 끼지 못 하는 이단아다.
좋게 보면, 반항아지만, 그냥 루저다. 

그의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나타내는 것도 솔직히 마음에 안 든다.
그는 언제나 '남부'의 몰락에 대해 초점을 맞춘다.
남부 귀족, 근친상간, 농부, 인간 말종들의 몰락.
어떻게 보면 단순히 인간 혐오자처럼 보이면서도,
가끔 보면 위선적이란 생각도 든다. 

<8월의 빛> 같은 경우, 나보코프가 케케묵은 감상주의의 산물이라고 말했는데, 딱 그렇다.
애당초 "인간은 똥이야 똥!" 같은 말하던 애가 갑자기 '인간애'를 강조하는 작품 쓰니까 신빙성 없다.
존나 위선자 스멜이 풍긴다.

솔직히 이런 모습이나 <성역> 보면 상업 스멜도 진하게 난다.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애 글 보면, 
절대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수 없을 것 같은 문체인데, 상업 스멜이 난다는 것이다.

마치 프루스트가 귀여니 같은 인터넷 소설 연재하는 기분이다.

가끔 보면 애도 옛 남부를 그리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냥 텍사스에서 말이나 키우며,  위스키 쳐마시고, 지나가는 사람들 쏘는 삶을 살라고 말해주고 싶다.
왠지 그러면 행복할 것 같다.

마지막 부분은 그냥 개인적인 감상이다.
실험적인 부분 자체는 나도 높이 평가해주고 싶다. 적어도 조이스 같이 똘끼적인 실험은 아니었다.



덧글

  • 시무언 2011/08/23 03:48 # 삭제 답글

    조이스의 책은 M들을 위한 필독서로군요!
  • JHALOFF 2011/08/23 14:47 #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 저는 M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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