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은 죽었다> 독서일기-희곡

예전 글 수정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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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은 죽었다> 는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영국 극작가 톰 스토파드(Tom Stoppard)의 희곡입니다.
영화도 있지만, 영화는 보진 않았습니다.

이 희곡은 셰익스피어의 가장 유명하면서, 걸작 중 하나인 <햄릿>을 재해석한 부조리극입니다.

작중 인물 중 상당히 마이너하고, 일반인들에게는 사실상 듣보잡에 가까운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햄릿이라고 볼 수 있죠.
마비노기에 등장하는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 마비노기 안 해봐서 잘은 모릅니다. 

원작에서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은 햄릿의 친구이자 클로디어스의 부름으로 미친 햄릿을 찾아다니거나, 햄릿을 죽일 편지를 영국까지 가지고 가는 일종의 따까리 역할을 수행합니다. 하지만 악당 햄릿의 편지 뒤바꾸기 기술로 결국 햄릿 대신 사형되는 불쌍한 녀석들이죠.

사신: 분부하신대로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은 죽었습니다. 이제 그 치사는 누구에게 받아야합니까? 

작중 마지막 부분에서 영국에서 온 사신이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은 죽었다고 짤막하게 전해줍니다. 이 희곡의 제목도 이 대사에서 나왔죠.

제 전반적은 느낌은 스토리가 있는 고도를 기다리며입니다.

극이 시작하면서부터 딱 부조리극 같은 장면이 펼쳐집니다.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은 동전 던지기를 하고 있는데, 연속적으로 수십 번 이상 같은 면만 나옵니다. 하지만 두 사람 다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고, 그저 묵묵히 동전만 던지죠.

이들이 이러는 이유는 있습니다.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에게는 '대본'이 없기 때문이죠. 희곡 <햄릿> 밖에서의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은 그저 목적도 없이 방황하는 유령들입니다.

둘은 자기들만의 놀이를 하기도 하고, 말장난을 하기도 합니다. 흔히 부조리극에서 잘 등장하는 장면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죠.

둘의 성격의 경우, 길덴스턴은 논리적이고, 로젠크란츠는 그냥 체념적이지만, 이들의 성격조차 아무런 힘을 쓰지 못 합니다. 둘 모두 자신의 정확히 누구인지, 어떤 일로 여기 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하는 지도 잘 모르는 상태죠.

이러는 과정에서 이들은 <햄릿>에서 연극을 했던 극단단원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또 하나 햄릿에서 부각되는 캐릭터가 바로 곤자고의 암살을 연극했던 극단주죠.

여전히 상당히 무의미한 대화를 하고, 로젠크란츤와 길덴스턴은 극단주와 대립하지만, 여전히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이따금씩 희곡 <햄릿>에 참여할 때는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읍는 조연들이지만, 밖에서는 할 일없는 유령들이죠.

극단주와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은 극에서 서로 배우나 예술, 죽음에 관한 견해로 계속 대립을 하게 됩니다.

인상 깊었던 대사는, 2막에서 길덴스턴과 극단주(곤자고의 암살의 그 극단주 맞음)와의 대화 일부분이었습니다.

길덴스턴: 당신! 당신은 죽음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소?

극단주: 그것은 배우들의 특기입죠. 그들은 어떤 것이든 자신의 특기를 최대한 이용해야되고, 그들의 재능은 죽는 겁니다.
그들은 때론 영웅적이게, 희극적이게, 아이러니하게, 느리게, 갑자기, 역겹게, 매력적이게 아니면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죽기도 하죠. 나의 재능은 좀 더 일반적입니다. 나는 멜로드라마에서 중요한 것만을 뽑습니다: 그것은 정작 안에는 들어있지 않지만, 구석에서만 볼 수 있는 죽음의 껍질을 부수고, 한 줄기 빛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죠.

길덴스턴: 그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인가, 죽는 것이?

극단주: 아니오, 아니오. 그들인 아름답게 죽일 수 있습니다. 사실 어떤 이들은 죽는 것보다 죽이는 것을 더 잘 하죠. 나머지는 죽이는 것보다 죽는 것을 더 잘 하고요. 그들은 같은 팀이니까요.

길덴스턴: 누가 어떤 역할을 하는가?

극단주: 큰 구별은 없습니다.

길덴스턴: 배우! 싸구려 멜로드라마의 숙련공들! 그것은 죽음이 아니야! 너는 비명지르고, 질식하고, 무릎을 꿇지만, 그것들이 죽음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누구도 놀래키지 않고, 그들의 해골에다 "어느 날 너는 죽을 것이다."라고 속삭이는 것과 똑같아. 너는 너무나도 많이 죽었다.  어떻게 너의 죽음을 그들에게 믿게 할 것이냐?

극단주: 사실 그것이 사람들이 믿는 단 한가지입죠.


상당히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가 극 중반에서 곤자고의 암살 장면. 거기서 로젠크찬츠와 길덴스턴은 자신들과 같은 사절들이 사형당하는 것을 보게 되고, 배우나 죽음의 대해 논쟁을 벌입니다.

진짜 삶과 연극의 경계, 무기력한 존재감, 삶의 불확실성 등 이러한 것들은 그들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결국 연극에서의 배우들의 죽음은 거짓입니다. 이런 점에 로젠과 길덴은 절망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무기력하죠.
마지막에서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은 편지가 바뀐 걸 알면서도, 끝내 처형당합니다. 그리고 <햄릿>의 마지막 장면이 연출되죠.

일단 <햄릿>을 한 번 읽고 나서 읽는 것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당히 잘 쓰인 희곡이고, 꽤 재밌습니다. 애당초 마이너한 조연들에게 집중한 것도 특이했고, 그러면서도 부조리극으로 바뀐 것도 참신했고요. 사실 어찌보면 원본 <햄릿>도 여러모로 부조리극 같은 면도가 있는데, 그것을 더욱 부각시킨 희곡 같습니다.



덧글

  • 시무언 2011/09/10 12:52 # 삭제 답글

    어째 책도 영화도 구하기 힘들것 같지만 찾아봐야겠군요. 어디서 보니까 맥베스나 햄릿을 추리소설식으로 재구성한 작품도 있다고 하는데 혹시 읽어보셨나요?
  • JHALOFF 2011/09/10 16:06 #

    들어는봤는데, 읽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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